‘경제검찰’로 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앞에선 유독 작아지는 모양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잇단 헛발질로 체면을 제대로 구긴 것.

사망자만 1300여명에 달하는 초대형 사건 가해 기업들을 무혐의 처분했다가 뒤늦게 제재하는가 하면 기초적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제재 대상을 누락시키는 아마추어적 실수까지 저질렀다.


◆‘가습기 살균제’ 앞에서 작아지는 공정위

지난달 28일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열고 SK디스커버리가 가습기 살균제 부당 표시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시정조치 및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7일 공정위는 분할 전 법인인 옛 SK케미칼의 가습기 살균제 부당 표시 행위에 대해 신설 SK케미칼에게만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3주 만에 고발 대상을 추가한 것이다.


구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1일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투자부문(SK디스커버리)과 사업부문(신 SK케미칼)로 분할했으며 존속법인은 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다. 신 SK케미칼은 이름만 물려받아 과거 사건에 대한 책임은 SK디스커버리에 있지만 공정위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사건 처리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공정위에 검찰 등에 따르면 기업 지배구조 현황을 파악하고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공정위는 구 SK케미칼이 지주사체제로 전환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공을 넘겨받은 검찰이 고발 요청서 보완을 요청하자 뒤늦게 인지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SK디스커버리 측이 분할 사실을 공정위에 알리지 않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SK디스커버리가 분할 사실을 공정위에 알려야할 법적 의무가 없다. 어설픈 해명은 기초적 사실 관계를 파악 못한 공정위가 책임 떠넘기기까지 한다는 또 다른 비판을 낳았다.

결국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말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한 자리에서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오류였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공정위의 잇단 실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공정위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느냐”며 “사안에 비해 너무 가벼운 과징금(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총 1억3400만원)도 문제지만 제재 대상 기업을 잘못 특정한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안일한 사건 처리… 피해자 ‘부글부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공정위는 2012년과 2016년 두차례 가습기 살균제 위해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의절차를 종료해 가해 기업들에게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고 지난해 말 이 심의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재조사에 착수한 끝에야 공정위 결정이 바뀌었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관련자들의 책임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고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 중”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 만큼 판단에 아쉬운 대목이 많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이 이 사건으로 지난달에만 두차례 고개를 숙였지만 되풀이되는 실수 끝에 기초적인 부분마저 놓치며 공정위의 무능력, 안일한 사건 처리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건 처리 단계별 피심인 확인 매뉴얼(설명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