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인 통신요금 인하를 두고 여론이 다시 들썩인다. 대법원은 지난 4월13일 이동통신 3사에 통신요금 산정 원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15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과 재산이 적은 이들의 이동통신 요금 1만1000원 감면 방안이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통신요금 인하 이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가 추진 중인 보편요금제와 제4이동통신 도입 문제로 확산 중이다.
◆이통사 ‘생색내기’에 대법, 원가공개 판결

통신요금인하 논란은 지난 겨울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부터 약 4개월간 이어진 가계통신비인하 정책협의회가 소득없이 끝나면서 이통3사가 관련 이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달 대법 판결이 나오면서 전보다 강한 인하 요구 여론이 번진다.


이통3사는 지난 2월 말부터 이같은 상황을 내다보고 선제전략을 펼쳤다. 가장 먼저 요금제에 손을 댄 곳은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8만원에 LTE 데이터 속도·용량 제한을 없앤 요금제를 선보였다. 이어 SK텔레콤은 고객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으로 알려진 위약금 제도와 로밍요금제를 3월 초부터 전면 개편했다. KT도 이에 뒤질세라 저가요금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데이터 제공량을 확대·제공한다고 밝혔다.


통신비 인하 이슈가 잠시 주춤하던 틈을 타 이통3사가 모두 통신비 인하를 내세워 총력전을 펼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앞다퉈 고객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을 시행한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고객의 불만도 줄이고 정부의 통신비 인하 움직임과도 부합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시장의 흐름은 통신사의 바람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3월 정기국회에서는 통신요금 인하 방안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였으나 대법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각 이통사의 통신요금 원가산정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하면서 반전 국면으로 들어섰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참여연대가 “통신서비스는 국민 생활 필수재이므로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소송을 낸 지 7년만에 나왔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조만간 통신사들의 영업보고서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비록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공익을 위해 사업자들의 영업비밀 보호가 제한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통신요금이 원가기준으로 설계된 것도 아니고 일부 영업비밀이 포함됐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이라며 “통신요금은 원가를 기본으로 설계되지 않고 경쟁상황, 고객 수 등 요금을 산정하는 데만 많은 비용이 추가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통신서비스가 공공재라는 점에 방점을 찍은 사례”라며 앞으로 통신요금 인하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대법원은 판결을 내리면서 “이동통신서비스가 전파와 주파수라는 공적자원을 이용하는 만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할 공익이 인정된다”고 했다.

◆남은 것은 보편요금제·제4이통

대법원의 판결 이후 통신비 인하 이슈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을 시작으로 최근 노인층 통신요금 감면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통신비 인하대책 단기 추진과제가 모두 정상궤도에 오르면서 중장기 과제로 지목된 보편요금제와 제4이동통신 도입까지 강한 탄력을 받은 양상이다.

보편요금제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1년 동안 격한 대립을 보이는 이슈다. 보편요금제는 정부가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SK텔레콤)에 특정 조건의 요금제 설립을 의무화하면서 전반적인 통신시장의 비용을 낮추는 방안이다. 가장 확실하게 통신요금 인하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묘안이란 입장과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보편요금제의 향방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여기에 최근 국내 케이블TV업계가 힘을 모아 제4이동통신을 설립하겠다고 공식발표한 게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보편요금제 도입보다 시장논리에 가까워 자율 경쟁을 통한 통신비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먼저 꼽힌다. 하지만 사업초기 막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 등 제4이동통신사 도입에 부정적인 면도 드러난다.

제4이동통신업체는 지금까지 총 7차례 도입이 시도됐으나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정부의 통신비 인하 의지가 강하고 여론도 어느 때보다 호의적이기 때문에 쉽게 속단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도 케이블TV업계 CEO와 만난 자리에서 “제4이동통신 진입장벽은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통신비 인하 방안에 “다각화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이동통신사와 통신서비스 사용자, 단말기제조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충분히 수렴한 후 정책을 세워야 한다”며 “통신업계와 시민단체도 통신비 인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역지사지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짚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7호(2018년 4월25일~5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