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서울광장 인근 골목길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다. /사진=강산 기자 "간접흡연시키기 싫은데 피울 곳이…." 지난 3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만난 A씨(30대 추정)는 '담배를 피울 장소가 부족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담뱃값은 올랐는데 흡연실은 부족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종로 인근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그는 "직장인 수천명이 드나들 정도로 큰 상권(종로구)에서 흡연구역이 부족하다는 게 말이 되냐"며 "(흡연구역을 늘려주지 않을 거면) 담뱃값을 낮추든 흡연구역을 늘리든 하루빨리 (흡연자들을 위해)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밤 9시 서울 시청역 인근 골목길에는 '금연구역' 팻말이 무색하게 담배연기가 코를 찔렀다. 골목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떨어져 있었고, 옹기종기 모인 흡연자들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경복궁역과 광화문역 인근 골목도 흡연자들로 가득했다.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길빵(길가흡연)'을 비롯해 골목 사이에서는 흡연자들이 뭉쳐 있었다.
진한 담배 연기에 거리를 걷던 비흡연자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시민들은 '간접 흡연'을 피하고자 코를 막고 신속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힐긋 쳐다보거나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는 모습 등에서 이들이 거리 흡연을 불편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흡연자들도 시민들의 이런 차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재빨리 담배를 버리는 듯했다.
따가운 눈초리에도 흡연자들이 골목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머니S>가 이날 서울 종로구·서대문구 일대 거리 등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을 취재해보니 문제는 심각했다.
지난 3일 밤 서울 광화문역 인근 골목길에 재떨이로 사용된 컵과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 /사진=강산 기자
◆"자동차 팔면서 주차장 안 만드는 꼴"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다. 지방자치단체가 길거리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금연구역을 늘리는 만큼 흡연자를 위한 대책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에 '흡연부스'나 '재떨이'를 설치해줘야 비흡연자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금연구역을 늘렸지만 정작 애연가들은 배려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흡연자·비흡연자·정부가 '상호배려'하는 올바른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의 운영자 이모씨는 "자동차는 팔면서 주차장은 안 만드는 꼴"이라며 "세금 중 일부를 흡연공간을 만드는 곳에 투자해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거리 흡연부스를 설치한 구는 14개구, 흡연부스는 59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만든 흡연시설은 '4개소'이며, 공모에 신청은 4개 자치구 6개소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시민건강국 관계자는 "상당수 자치구가 공모 추진 도중 사업을 포기하였으며, 그 이유는 '흡연시설' 설치 대상지 주변 시민들의 반대였다"며 입장을 전했다.
/사진=뉴시스 DB
일각에서는 '흡연자를 무시한' 정부의 담배규제가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흡연정책은 '규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2015년부터 모든 음식점에서 전면 금연정책을 시행했고 최근에는 스크린골프장과 당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심지어 지난 1일부터는 흡연카페마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따라서 흡연자들은 금연구역을 벗어난 골목 외진 곳이나 건물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고 그곳을 지나는 비흡연자의 간접흡연으로 이어진다.
담배와 관련, 지출되는 예산 또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건강증진기금 예산액(사회복지+보건)은 총 3조7342억원이며, 지출 총액은 3조3001억원이다. 이 중 금연사업에 지출된 금액은 1469억원으로 지출 총액 중 4.4%에 불과하다. 올해 편성 예산도 1470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흡연자들을 위한 시설에 국가예산을 쓴다는 것은 금연정책 기본 방향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며 "흡연실을 아무리 완벽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간접흡연을 100%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국제적인 연구결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금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 긴자 오피스 빌딩 '스모킹캐빈' 부스에서 한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뉴스1
◆선진국, 분리형 흡연공간으로 문제 해결 정부의 설명에도 흡연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 국가의 흡연 문화를 언급하면서 "한국은 흡연자가 살기 가장 어려운 나라"라고 외치기도 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스위스·프랑스 등에서는 흡연자를 배려해 흡연공간을 곳곳에 설치하는 '분리형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존중한 정책을 펼친다. "흡연을 막을 수 없다면 간접흡연이라도 막자"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담배는 합법적인 판매상품이고 흡연자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반영했다.
흡연공간 설치를 위한 예산을 더욱 확대하되 설치기준을 높여 간접흡연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다. 일본은 2004년부터 '분리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분리형은 흡연공간을 만들어 비흡연자와 흡연자를 떼어놓는 방식이다. 흡연공간의 출입형태와 내부소재, 배기풍량 등의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된다.
심지어 직장 내 흡연공간을 만들면 최대 설치비용의 50%까지 지원한다. 2015년 기준 대다수 음식점(70%)과 오피스(97%)에서 전면금연 또는 흡연공간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실외도 마찬가지다. 흡연자의 흡연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고 있다. 비흡연자의 동선에서 떨어진 장소에 흡연공간을 설치하고 나무화분 등으로 흡연공간을 구분해 불쾌감을 없앴다.
한국도 일본처럼 흡연 규제가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만든 흡연시설이 '4개'인 것을 고려할 때 문제가 해결된다고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불만이 한국보다 적은 것을 감안하면 규제 완화는 '필요'가 아닌 '필수'인 듯 보인다. 일본보다 흡연율이 높은 한국에서 흡연자가 설 곳이 없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