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으로 통하는 암문에서 성곽을 따라 내려오면 서울국제고와 서울과학고의 뒷담을 지나게 된다. 이후 서울과학고와 경신고 사이 포장도로에서 성곽이 끊긴다. 산 능선에서는 제 모습을 유지했던 성곽이 평지에서 원래 모습을 감춘 것이다.
◆사라진 성곽의 유구
이곳에서 더 내려가기 전에 현재 국제고 자리의 역사를 살펴보자. 1915년에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학림이 세워졌으나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가 강제 폐교했다. 1928년 4월30일 그 자리에 불교전수학교가 개교했고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 개편된 다음 1940년에는 혜화전문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5월 일제는 학교를 정비한다는 구실로 또다시 강제 폐교했다. 혜화전문학교는 광복 후 1945년 10월 다시 개교, 1946년에 동국대학으로 승격 개편됐다가 이듬해 지금의 중구 필동으로 이전했다.
그 후 1972년 이 학교부지에는 혜화초등학교가 옮겨왔고 혜화초등학교 부지에는 혜화여고가 이전했다가 2002년 혜화여고가 수유리로 이전하면서 혜화초등학교는 다시 원래 부지로 돌아갔다. 한동안 비어 있던 이 학교부지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지금의 특수목적학교인 서울국제고가 들어왔다.
서울과학고 자리는 보성고등학교 자리였다. 보성고등학교는 이용익이 1906년 9월 현 조계사 자리에 사립 보성중학교로 창립했다. 그 후 1914년 7월 교명을 사립 보성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한 데 이어 1927년 5월 혜화동 1번지에 교사를 준공하고 이전했다. 거기서 60년 이상 있던 학교는 1989년 5월 방이동 신교사로 이전했다. 보성고등학교가 이전한 뒤 5개월 만에 서울과학고가 혜화동 1번지에 들어섰다.
우암로라는 소방도로에 의해 서울과학고 후문에서 끊긴 성곽의 유구는 경신중고등학교 뒷담장의 밑돌이 됐다. 이 밑돌은 약 50m쯤 이어지다가 이마저 사라지면 곧 경신고 뒷담 길에서 혜화문까지 계속되는 혜화문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 길은 혜화동과 성북동, 혜화동과 성북동 1가의 법정동 경계이므로 이 길을 따라 성곽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 구간에서도 땅밖으로 드러난 성돌 위에 콘크리트담장을 쌓은 성곽의 잔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학교의 전신은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언더우드(1859~1916)의 지원으로 1885년 10월 정동 32번지(지금의 이화여고 자리)에 개설했던 언더우드학당이다. 이 학교는 1886년 고종으로부터 승인도 받았다.
◆옛 서울시장공관을 향해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가 계속 정동을 떠나지 않았던 데 반해 언더우드가 세운 정동교회(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는 1907년 신문로1가로, 언더우드학당은 1901년 연지동으로 이전했다. 1905년에는 ‘새로운 것을 깨우친다’는 의미로 교명을 ‘경신’(儆新)으로 바꿨다. 1930년대 말 학교 경영이 어려워져서 연지동 교사를 매각하고 정릉동 산 90번지로 이전했다가 1955년 6월 현재의 위치인 혜화동으로 이전했다.
경신중고등학교 담에서 사라진 성곽 유구는 학교 옆 주택담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 끊어지다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혜성교회 입구 계단과 담장에서 제법 길게 뻗은 성곽 유구가 나타난다. 세종 때의 것이다.
혜성교회를 지나면 성곽의 유구는 다시 100m 정도 사라지고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사라졌던 흔적은 두산빌라의 담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담장은 높이가 3m 이상으로 체성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150m 정도 이어지는 이 구간 끝에 옛 서울시장공관이 있다.
종로구 창경궁로 35길 63번지인 서울시장공관은 1940년 일제강점기에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목조건물이다. 이 건물은 1959년부터 1979년까지 20년 동안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1981년부터 서울시장공관으로 쓰였다. 서울시장공관부지는 일제가 도성성곽을 파괴하고 만든 택지다. 조선시대의 도성 순성로를 택지로 분양해 사유지가 됐고 성곽은 건물의 축대가 됐다.
게다가 일제는 1939년 돈암동까지 전찻길을 내면서 혜화문을 없애기 전 혜화동과 동소문동을 잇는 도로를 냈는데 이때 서울시장공관 옆으로 이어진 성곽이 헐렸다. 이런 까닭에 문화재 훼손을 방치한다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았던 서울시는 2009년까지 서울시장공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여의치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2013년 은평뉴타운 미분양아파트 분양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잠정적으로 시장공관을 그곳으로 옮겼다가 2015년 2월8일 가회동 북촌한옥을 전세로 얻어 사용하고 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도성이야기>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9호(2018년 7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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