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촛불집회. /사진=뉴스1DB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으로 국내 항공업계의 오너 이슈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연대는 서로 합심했고 시민도 동참해 힘을 보태고 있다. 직원들은 그간의 설움을 쏟아내듯 ‘오너 퇴진’을 요구한다. 동시에 각종 갑질·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오너 리스크가 항공업계 전체에 타격을 입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을’의 외침에 반응한 시민들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이 자리에는 국내 대표 항공사이자 경쟁 상대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한마음 한뜻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서로를 위로했다. 두 항공사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외친 구호는 ‘갑질과 비리를 일삼는 오너 퇴진’이다.

오너 퇴진을 주장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을’의 입장이다. 직원들은 회사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에 나가 오너 일가의 파행적 경영과 갑질 의혹을 토로한 직원들의 모습은 진정성 있게 비춰졌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촛불집회에는 시민도 동참했다. ‘갑’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시민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대한항공의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시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초기에는 직원들만의 시위로 오너의 퇴진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민이 동참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너 입장에서 이번 사태만 버티면 끝난다는 식으로 간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길거리 게릴라 집회를 벌이며 시민서명운동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식어가던 오너 이슈의 재점화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일 발생한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부터 샤프도앤코코리아와 기내식 납품 3개월 단기계약을 맺었다. 당초 게이트고메코리아와 기내식사업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공장 설립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 아시아나항공 측은 기내식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계약 첫날부터 문제가 터졌다.

일각에서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회생을 위해 중국 하이난그룹과 손을 잡았고 1600억원의 투자금을 받기 위해 기존 기내식업체와 계약을 끊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설상가상 과도한 업무와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샤프도앤코코리아의 협력업체 사장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시아나항공 촛불집회. /사진=뉴스1DB

박삼구 금호아사아나그룹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화에 나섰다. 박 회장은 “전적으로 우리(아시아나항공)의 잘못이다. 죄송하다”며 “경영진에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회장의 긴급회견은 실패한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박 회장을 지목했다.
이기준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 노조위원장은 지난 6일 1차 촛불집회에서 “어느 한사람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기내식 대란을 맞았다”며 “더는 굴종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번 집회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이 언급한 어느 한사람은 박 회장이다.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서는 대한항공 사례와 마찬가지로 오너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한 제보가 잇따랐다. 승무원들은 서울 강서구 오쇠동 본사에 박 회장이 올 때마다 노래, 춤 등을 준비했다고 폭로했다. 직원들은 ‘승객·직원 굶기는 갑질삼구 OUT’, 39OUT’등 오너를 비난하는 자극적인 문구로 피켓을 만들어 시위에 나섰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오너 퇴진을 위해 거리로 나서자 침체기에 빠졌던 대한항공 직원연대도 다시 움직였다.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갑질’로 재발된 총수일가 갑질논란은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태였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합심했다. 지난 14일 열린 집회에도 양사 직원들이 공동집회에 나서 오너 퇴진을 요구했다.

◆오너 이슈로 역풍 맞은 업계

시민의 동참이 지속되는 데다 항공사에 대한 신뢰까지 추락하기 시작했다. 수십여건에 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글과 SNS에 퍼진 갑질논란 항공사 불매운동, 오너 처벌 요구 등이 이어진다.

이들의 노력은 기업의 경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진에어 등기이사직에서 내려왔다.

급기야 직원들의 각종 제보로 양산된 오너 이슈는 국내 항공업계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공직자까지 엮인 밀수·탈세 의혹이 불거졌고 항공편의를 봐준 사례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공무원 해외출장 시 대형항공사 이용을 의무화한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를 폐지했다.

오너 이슈로 야기된 가장 큰 피해는 항공사의 면허취소 논란이다. 미국 국적인 조 전 전무가 2010년부터 6년간 불법 등기이사로 재직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에어가 면허취소 기로에 놓였다. 이후 아시아나항공 역시 외국인 불법 등기이사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면허취소는 항공사에게 사형선고와 같다. 국적항공사의 면허취소 시 그 빈자리를 외항사가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외항사들은 매년 성장세를 보이는 한국 항공시장에서 중장거리 노선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대형항공사들의 오너 이슈가 국내 항공산업을 위축시키는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법적인 처리는 달게 받아야 하겠지만 법을 엄격히 적용해 면허취소나 경영진 구조조정에 손을 대면 항공업계의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논란으로 국내 항공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국가 차원에서 보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9호(2018년 7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