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때문에 보험사들이 울상이다. 2021년 도입되는 IFRS17은 전체 회계시스템만 바꾸는 게 아니라 보험사 주력 수익상품과 자본확충 전략을 수정하게 한다. 특히 달라질 회계기준 탓에 자본확충에 나서야하는 보험사는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영업현장과 보험사 직원들도 IFRS17 도입을 앞두고 볼멘소리를 낸다. 

◆적립금 쌓으니 실적 줄었네
IFRS17이 보험사를 괴롭히는 이유는 자본 때문이다. 보험사는 나중에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금만큼 적립금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IFRS17이 도입되면 적립금 산정방식이 대폭 변경돼 지금보다 더 많은 적립금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고객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적립금 여력을 지급여력(RBC)비율이라 하는데 당국은 보험사별로 이 비율을 150% 이상 유지하라고 권고한다. 자본을 더 쌓아야 RBC비율이 높아지므로 보험사는 적립금 쌓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사는 적립금을 늘리기 위해 먼저 저축성보험 판매를 줄였다. IFRS17은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나중에 돌려줘야 할 보험료인 저축성보험 판매는 팔수록 보험사에 재무부담을 안겨준다. 이에 보험사들은 대부분의 주력상품 라인을 보장성보험으로 바꾸고 있다. 지난해부터 설계사들에게 지급되는 시책(인센티브)이 변액보험, 종신보험에 집중된 것도 저축성보험 판매를 줄이려는 보험사의 판단에서 비롯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생명보험사 저축성보험 수입보험료는 8조6287억원으로 보장성보험 수입보험료(10조2997억원)를 밑돌았다. 보험사가 보장성 상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수익보험료에서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저축성 보험료 수입이 보장성 상품보다 낮은 것은 2011년 1분기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전반적인 보험영업 실적 악화로 당기순이익도 주춤했다.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1조2324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1.7%(3416억원) 줄었다. 보험사 실적하락을 무조건 IFRS17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익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여러 보험사는 부채로 잡히지 않는 변액보험으로 영업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추세다. 변액보험은 저축성보험처럼 확정 이율을 가입자들에게 지급하지 않기에 보험사의 자본 부담을 줄여준다. 하지만 변액보험은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퍼져있어 보험설계사들이 영업을 하는 데 애를 먹는다.


보험사로서는 자본확충 방법도 고민거리다. 최근 금리상승 영향으로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계획했던 보험사들은 대부분 국내 발행으로 방향을 돌렸다. 현대해상은 지난 5월 5~7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계획했으나 해외 금리상승을 고려해 올 3분기 국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한화손보는 지난달 23일 1900억원 규모의 국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동양생명도 당초 예정됐던 5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에서 국내 후순위채 발행으로 전환했다.

신종자본증권은 그동안 보험사의 주요 자본확충 방안이었지만 미국발 금리인상 등으로 더 이상 매력적인 방안이 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대 10억달러에 달하는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했던 교보생명도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2~3%대이던 가산금리가 6~7%대로 치솟아서다. 

결국 교보생명은 자본확충 압박에 그동안 미뤄오던 기업공개(IPO) 카드를 고려 중이다. 올 초 새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초안이 확정되자 교보생명은 최대 5조원 이상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교보생명은 6년 전 IPO 추진을 선언했지만 재무적투자자와 오너측이 신경전을 벌이다가 유야무야됐다. 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글로벌 자문단에게 자본 확충을 위해 IPO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당초 킥스 도입을 앞두고 3단계 로드맵을 구상했다"며 "요구자본 축소와 신종자본증권 발행 검토 등이 1~2단계라면 3단계는 증자를 본격 검토할 시기다. IPO는 그 방안 중의 하나일 뿐 반드시 상장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IPO는 교보생명이 대형보험사로 확고히 자리를 굳힐 좋은 기회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다. 앞서 상장에 나섰던 다른 보험사의 성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이미 상장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주가는 지난 7일 종가 기준으로 공모가보다 40%가량 하락했다. 교보생명 역시 흥행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의미다. 

◆시스템 교체비용도 만만찮아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을 대비해 전산회계시스템을 교체하거나 새 시스템개발에 나선 상태다. 대형 생·손보사는 각각 회계법인 혹은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으며 중소 보험사는 보험개발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 구축 비용이 만만찮다. 관련업계는 시스템 개발을 위해 각사별로 최소 100억원에서 많게는 3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기존 회계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거의 모든 업무 시스템을 바꾸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며 "국제적인 회계기준이니 따라야겠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피곤한 일"이라고 밝혔다.

보험사 직원들의 교육도 문제다. 관련 내용을 미리 교육받은 일부 직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IFRS17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보험사들은 자체 세미나를 개최해 새로운 보험제도가 도입되는 배경과 ‘부채 시가평가’ 및 신지급여력제도의 기본적인 개념을 전 직원이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한번의 세미나로는 전문가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IFRS17의 세부내용을 알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보험사 관계자는 "전문가를 초청하고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빼는 것 등을 감안했을 때 세미나를 한번 개최하는 일도 쉽지 않다"며 "지금으로서는 내부게시판이나 교육자료 배포를 통해 직원들이 최대한 새회계기준을 이해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3호(2018년 8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