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의 그늘] ① 상속·증여세 부담에… 50년 버티는 중소기업 0.2%
"증여세 때문에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서울 구로구에서 40년째 철강기업을 운영 중인 김준명씨(가명·75·남)는 가업승계에 애로를 겪고 있다. 수백명의 직원을 이끌고 한국과 중국 엔지니어링 기술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김씨. 1970년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발전에 기여해 국가공로패까지 받았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가업을 자녀에게 물려줘야 할 시점. 하지만 최고세율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가 부담돼 몇년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김씨는 "어릴 적 푼돈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회사를 만들었다"며 "직원 4명으로 시작해 수백명에 이르는 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내 힘으로 일군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줘 가업을 잇게 하고 싶은데 정부에 50% 가까이 상속세를 내야 하니 이게 말이 되는 건지 슬프고 비참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최대주주 할증률까지 더하면 세율은 더 오른다"며 "정부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가업 상속공제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중견기업 대다수가 조세부담과 복잡한 승계지원제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길 원하지만 막대한 증여세 부담에 '가업 승계'보다는 '회사 매각'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전체 중소기업 중 업력이 50년 이상인 '장수 기업' 비율은 0.2%에 불과하다.
현재 증여세율은 증여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증여액이 1억원 이하일 때 10%, 1억~5억원 이하 20%, 5억~10억원 이하 30%다. 10억~30억원 이하는 40%, 30억원 초과 시엔 50%로 높아진다.
◆재산관련 세수 49조… OECD 2위
우리나라의 2015년 재산관련 세수는 48조6000억원으로 전체 세수의 1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인 6%보다 2배가 많다. 총세수의 13%에 해당하는 법인세 세수는 52조원으로 OECD 평균인 9%보다 4%포인트 높다.
재산관련 세수는 ▲재산세 9조3000억원 ▲종합부동산세 1조4000억원 ▲상속세 1조9000억원 ▲증여세 3조1000억원 ▲등록면허세 1조8000억원 ▲증권거래세 4조7000억원 ▲취득세 20조1000억원 ▲기타 6조3000억원 등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달 27일 OECD의 지난해 수입통계(Revenue Statistics 2017)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이 OECD 35개국 중 총 세수에서 차지하는 재산관련 세금이 2위며 법인세 5위, 부가가치세 27위, 소득세는 27위라고 밝혔다.
총세수에서 17%를 차지한 소득세 세수 68조원은 OECD 평균(24%)보다 7%포인트 낮았고 총세수의 15%인 부가가치세는 60조2000억원으로 OECD 평균(20%)보다 5%포인트 낮았다.
◆중소기업 68% "상속·증여세 부담"
중소기업중앙회기 지난해 11~12월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중소기업 67.8%는 승계 계획이 있으며 64.6%는 '자녀에게 승계하고 싶다'고 답했다.
경영 1세대일수록, 대표 연령이 높을수록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경영 1세대(342곳)는 자녀승계 희망 비율이 76.9%로 '2세대 이상'(38%) 보다 두배가량 높았다. 대표 연령이 '70세 이상'인 기업(135곳)의 비율은 83%로 '60세 미만'(157곳)의 비율 32%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승계방식을 결정하지 못한 비율은 58.2%로 2위인 '생전 증여'(27.4%)를 두배 이상 웃돌았다. 현행 가업승계제도가 현장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된다.
가업승계의 애로사항으로 '상속세, 증여세 등 조세부담'을 꼽는 인원이 67.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자금, 판로 등 종합적 지원정책 부족이 17.4%로 뒤를 이었다.
◆50년 버티는 중소기업 '0.2%'
이대로 가다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중소기업의 승계·증여는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5일 공개한 '한국 장수기업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가업 승계·증여제도를 개선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중소기업의 안정적 승계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중소기업 중 99.8%(69만6001개사)가 업력이 50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력이 만 50년 이상인 중소기업은 1629개사에 불과했다. 중소 장수기업의 평균 업력은 56.1년이었다.
이와 관련 신 수석연구위원은 "특히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승계문제 해결은 지속성장을 위한 과제가 됐고 '사회적 자산의 전승'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규모 개인 기업의 지속성장을 활성화하는 제도 정착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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