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양도수씨, 정향미씨, 김현우씨, 안종철 한국 오라클 노조위원장. /사진=채성오 기자
# A씨는 정보시스템기업에 입사한 후 2년6개월간 한달에 하루 쉬며 약 8770시간을 근무했다. 살인적 야근에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항생제가 듣지 않아 우측 폐 절반을 잘라냈다. 회사는 수술 후 복귀한 A씨의 동의도 없이 대기팀으로 발령냈고 정신·육체적으로 감당이 안 돼 휴직 연장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하며 해고 처리하기에 이른다. 4개월 만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았지만 회사는 A씨에게 2차 해고조치를 내렸다. A씨는 8770시간 근무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 후 고소를 진행했지만 회사는 야근을 인정하지 않았고 노동부도 1년 넘게 관련 사안을 조사하지 않았다.
# 웹디자이너로 IT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B씨는 월 69시간의 연장근로와 일일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회사는 포괄임금계약이라는 전제로 별도 수당없이 직원들을 부리기 시작했고 야근의 경우 스타트업 정신과 열정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바빴다. 계속되는 야근과 업무스트레스로 한달간 휴직한 B씨에게 돌아온 것은 최소 4명이 할 수 있는 분량의 일감과 모멸감이 드는 폭언이었다. 뿐만 아니라 채식주의자였던 B씨에게 고기를 먹으라 강요하고 업무와 관계없는 책을 주말동안 읽으라고 지시하는 등 직장내 괴롭힘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강남노동지청에 회사를 신고했지만 근로감독은 바로 시행되지 않았고 그 사이 B씨는 번아웃과 탈진으로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양도수씨와 고 장민순씨의 실제 피해사례다. 그간 IT업계에서 잔인한 물리·정신적 갑질이 자행됐지만 담당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대응이 미비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13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 노동조합은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폭행사태로 본 IT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사례 보고’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IT기업에 갑질을 당한 피해자들의 구체적 사례가 소개됐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살인적인 야근으로 면역력이 저하돼 폐까지 잘라낸 고통을 겪은 양도수씨는 사법부로부터 근무시간의 약 75%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다른 중소기업 직원으로 쇼핑몰 관리업무를 담당하다 롯데하이마트 소속 B팀장과 H매니저에게 폭언 및 폭행당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간담회에서 “폭언·폭행은 위디스크 양진호 동영상처럼 수십명의 동료가 보는 가운데 발생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며 “지난해 7월 이슈를 제기해 롯데하이마트로부터 사과를 받고 가해자 두 사람을 직위해제하고 지방 좌천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러나 롯데하이마트는 올 2월 합의를 깨고 가해자들을 복귀시켰다. 남들은 한 번 당하고 입 다물고 있지만 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IT노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노회찬 정의당 의원님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그러나 단 한 곳 담당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도와주지 않았는데 농협정보시스템 사건을 1년 넘게 쥐고 시간만 끌다 경찰에 넘겼고 롯데하이마트 사건의 경우도 아무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향미씨가 고 장민순씨가 당한 갑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채성오 기자
고용노동부가 방치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장민순씨의 언니 장향미씨는 이날 간담회에 출석해 고인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장씨는 “에스티유니타스는 따로 출퇴근 시간을 관리하지 않는다며 과도한 업무로 밤낮없이 야근을 종용했다”며 “평등문화를 강조하면서도 상사의 일방적 업무지시를 따라야 했고 대표 말 한마디에 모든 작업을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하거나 가이드 없이 컨펌까지만 반복시킴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담당실무자에게 돌렸다”고 말했다.

이어 장씨는 “동생은 부모님과 제가 걱정할까봐 죽을 만큼 힘들까봐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 과중과 직장상사 문제를 토로했다”며 “너무 화가 나서 강남노동지청에 신고했지만 근로감독은 바로 시행되지 않았고 동생은 크게 좌절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삶을 끝내고 싶은게 아니라 일이 주는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디자이너로 일했던 김현우(25)씨의 경우 열정페이로 둔갑한 IT스타트업의 갑질을 폭로했다. 김씨는 해당 IT스타트업에서 일하는 2년반 동안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편의점 음식을 먹는 숙식생활을 강요당하며 일했지만 총 15만원을 받은게 전부였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표가 구두로 약속한 지분관계를 믿었고 실제로 회사가 급성장하는 것을 보며 대학교를 휴학할 만큼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IT와 상관없는 건축현장이나 사내 요식업·패션사업부 등 여러 사업체에 투입시켰고 대표의 경우 김씨가 사비로 선풍기와 LED라이트를 샀다는 이유를 들어 무차별 폭행을 자행했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회사를 도망쳐 나온 후 노동관련 단체를 찾아갔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믿기 힘들다는 이야기 뿐이었다”며 “노동청은 실질적으로 계약서가 없다며 무혐의 행정종결 처분을 내렸고 사측은 이를 이용해 허위사실유포와 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저를 두 번 고소했다”고 말했다.

안종철 오라클 한국지사 노조위원장은 한국오라클유한회사가 기업용 소프트웨어 매출 세계 2위, DB 점유율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일상화된 권고사직, 저성과자 프로그램을 통한 괴롭힘, 조직적 불법매출 강요, 일상적 욕설회의, 시간외 근무수당 미지급 등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현우씨가 IT스타트업에 만연한 갑질행태를 폭로하고 있다. /사진=채성오 기자
장재원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2013년 7월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IT노동자 근로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통해 IT업계의 가혹한 노동환경을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당시 주 40시간 미만 노동 비율은 1%에 불과한 반면 주 70시간 이상의 불법적 초장시간 근로율은 19.4%에 달했다.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연장근로 등 법정수당을 지급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도 76.4%에 달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장 변호사는 “노동청이나 법원 등 관계기관은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매우 인색한 태도를 보인다”며 “정확한 조사와 법리에 근거한 판단보다 담당 근로감독관의 입장과 태도가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노동부는 정확한 매뉴얼 작성과 교육을 통해 공정한 판단이 이뤄지도록 변화를 도모해야 하며 근로자성의 인정 범위도 법률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담회에서는 IT업계 갑질 타파와 근로문화 개선을 위해 ▲근로감독 강화 ▲노동자 심층조사 정례화 ▲제보자 신원 보장 ▲기존 법·제도의 온전한 작동 ▲차별적 고용문화 개선 등 5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김환민 직장갑질TF팀장은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단순 인건비 절감을 목표로 하도급과 파견 구조를 유지하며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거나 암암리에 고용차별을 행사한다”며 “정부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산업 후퇴를 직시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노조 측도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