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뉴스1
재계 14위 한진그룹에서 경영권 분쟁 우려가 불거졌다. 그레이스홀딩스가 경영권 행사목적으로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을 공시한 데 따른 것이다. 만약 그레이스홀딩스의 최대주주인 KCGI가 한진칼의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사실상 그룹 경영권을 통째로 확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KCGI의 등장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게 견제장치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1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5일 그레이스홀딩스는 한진칼 지분 9.0%를 취득해 2대 주주가 됐다고 밝혔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13일까지 한진칼 지분 4.96%를 확보한 후 14일 585억원 상당의 한진칼 지분 4.02%를 추가 매수해 단번에 주요주주로 올라섰다. 한진칼 지분 인수에 든 비용은 1357억원으로 모두 자기자본이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8월 설립된 투자목적회사이며 최대주주인 KCGI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가 해산하면 따라 해산하도록 돼있다. KCGI제1호의 대표집행위원은 KCGI로 이 회사의 대표는 강성부씨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의 경영권을 넘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스홀딩스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 9%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17.84%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아울러 조 회장의 친인척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치면 경영권 지분은 28.95%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 의결권 차이만 3배에 가깝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케이씨지아이제1호는 출자약정액 1597억원으로 한진칼의 지분을 인수하는데 대부분을 사용한 상태다.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의 경영권을 뺐어오려면 단순 계산으로 3000억원이 더 필요하며 이 회사는 이번 지분인수로 주요주주가 됐다. 이는 지분 인수사항이 수시로 공시된다는 뜻이다. 지분 추가 확보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의 방어적 지분인수나 투자자들의 기대심리 등으로 한진칼의 주가가 급등할 수 있다. 이는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는 데까지 필요한 자금이 천정부지로 커진다는 이야기다.

실제 시장 투자자들이 이같은 경영권 분쟁에 따른 경쟁적 지분매입을 기대한 탓에 한진칼의 주가가 한때 10% 넘게 급등하기도 했다.


KCGI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CGI는 지난 19일 입장문을 통해 “KCGI1호 펀드는 한진칼 경영권에 대한 위협보다는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KCGI가 한진칼의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금융투자업계는 KCGI가 한진칼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한진칼의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이나 Credit Suisse Group AG 등과 연대하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또 주목할 점은 한진칼은 3분기 말 기준으로 4만6448명의 소액주주가 지분 58.38%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4만명이나 되는 소액주주와 연대한다는 것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지만 조 회장일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드높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진그룹 계열사인 대한항공에서 소액주주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우려는 앞서 엘리엇에게 경영권을 위협당한 삼성과 현대차 등이 ‘국부 유출’이란 프레임으로 주주들에게 옹호여론을 만들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한진그룹의 경우 ‘땅콩회항’, ‘물컵 갑질’ 등 수 많은 ‘오너리스크’가 수차례 불거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KCGI의 공언대로 이번 지분 확보가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이번 이슈는 한진칼 주주와 임직원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수십년간 확고한 경영권을 유지했던 조 회장 일가에 견제장치가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눈은 한진그룹의 배당과 ‘오너리스크’ 견제에 맞춰졌다. 한진그룹은 주주 배당을 거의하지 않는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다른 그룹총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신 조 회장의 경우 보수도 유난히 많이 받았다. 지난해 조 회장이 받은 보수는 약 66억원으로 재계 10위권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적대적 M&A 시도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면서도 “이번 계기로 한진그룹이 고질적인 오너리스크와 주주 홀대 기조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