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서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채성오 기자
“최근 WHO의 게임 질병코드 분류 추진 등 일련의 사태를 목도하면서 든 생각은 1990년대 말 만화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대중문화콘텐츠 가운데 엄청난 공세를 받은 가까운 경험이 만화인데 이현세·허영만 선생님 등 당시 이름을 날렸던 작가분들이 한순간에 추락하는 것을 지켜봤었죠. (게임 질병코드 등재는) 그것에 준할 정도의 문화적 파괴이자 대중문화콘텐츠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 게임 질병코드 분류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대중매체콘텐츠인 ‘게임’이 ‘질병물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까지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힘의 작동원리를 강조했다.

박 교수는 만화를 예로 들며 새로운 대중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공격이 있었지만 게임은 그 심각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만화 역시 공격을 받아 움츠러들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문화적인 지적에 근거했다”며 “문화에 관련된 문제는 문화적 담론으로 풀어야 하는데 게임은 질병이라는 의학적 접근으로 풀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안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수직 위계적인 집단간 갈등이 해체되며 수평화하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 사회 갈등의 주체가 노동자와 자본가 혹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간 구조였다면 최근 들어 개인화한 경향이 뚜렷해졌다. 갈등의 원인이나 적용 대상이 개인에 집중된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즉 권력의 작동원리가 개인을 지배하는 수단중 하나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최근 공격의 대상이 된 게임도 이런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게임을 하면 위험하고 심하면 정신이 병든다’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함과 동시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메커니즘 속에 작동하는 힘과 새로 만들어지는 문제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박 교수는 조언했다.


그는 “게임을 즐기는 것은 보편적 문화현상이지만 유독 중독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며 “이는 만화와 일맥상통하는데 두 매체 모두 향유계층의 가치·연령 서열이 상대적으로 아래 자리에 위치한다. 만화나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킴으로써 통제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문화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문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어떤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향유하고 관련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가를 떠나 게임 자체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우선시되고 있다”며 “문제가 되는 게임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데 실제로 지금의 담론이나 상황에서는 이런 구체적이고 실질적 얘기를 못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기조가 계속되면 게임문화의 발전에 대한 생산적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다”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하고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