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1921~1968)이 1968년 6월16일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 <풀>(1968년 5월29일작)의 끝 연이다. 풀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의 저항심과 자립심이 눈에 띄었다.
<풀>은 <논어>의 한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안연>)는 말이 그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는 것처럼 군자가 올바른 덕을 닦아 제대로 행동하면 소인은 그에 따라 저절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눕는 것을 바람 부는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본다면 이런 해석이 옳다. 하지만 눕는 것을 그냥 바람을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공자의 4가지 절사
여기서 풀은 대나무를 닮았다. 센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면 부러진다. 하지만 대나무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다가 바람이 그친 뒤 다시 곧바로 선다. 이런 적극적이고 저항적이며 자립적인 풀의 모습을 김수영 시인은 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군자가 주도하고 소인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군자와 소인이 서로 협력해 사회를 살맛나게 만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군자와 소인, 지도자와 국민,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의 협력은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에 필수적이다. 공자는 이를 위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4가지를 강조했다. 바로 “무의, 무필, 무고, 무아”(毋意, 毋必, 毋固, 毋我)다. 의(意)는 객관적 근거없이 제멋대로 생각을 만들어 내 스스로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필(必)은 상황과 여건이 어떠하든 하고자 한 일은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이며 고(固)는 한번 정한 것은 무조건 지켜낸다고 하는 고집불통이다. 아(我)는 나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스럽게 이루겠다’는 ‘무의, 무필, 무고, 무아’는 이기주의를 끊어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절사(絶四)는 애제자였던 자공에게 평생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가르쳐줬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중궁(仲弓)이 어짊에 대해 물었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집밖에 나서면 중요한 손님맞이 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 모시듯 하며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으면 나라와 집안에서 원한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예수의 <산상수훈>과 황금률
나만 생각하고 내 욕심만 차리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성경>에도 황금률로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황금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속한 것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온다.
“그럼으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와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누가)는 게 그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말과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내 몸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나만 옳다는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상대방이 옳을 수 있으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포용이 절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역>에서는 포용의 출발을 “어리석음을 품어 끌어안는 포몽(包蒙)”이라고 했다. 그렇게 “포몽을 실천하면 길하고 지어미도 얻어 길하며 자식이 제대로 커서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을 키우려면 열심히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공자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편찬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 곧 학습을 <논어>의 맨 앞에 놓았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그것이다.
공자도 <논어> 곳곳에서 배움을 강조했다. 특히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움을 좋아하지 않는 폐해는 제멋대로 방탕에 빠진다”고 밝혔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운 것에 그치지만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거듭 지적한 것은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한 예수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동서고금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넓고 깊게 배우고 익히면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타당하고 유효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고 그런 올바른 대책을 실천하면 밝고 발전된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태평세월' 한국 정치권
한국은 지금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미국과 중국이 끝나기 쉽지 않은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수출국인 중국이 세계패권을 놓고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갖고 있는 미국과 아편전쟁에서 당한 망신을 200년 만에 갚아주고 5000년 동안 찬란했던 중화민족의 영광을 부흥시키겠다는 중국은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며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태평세월이다. 국회의원선거법과 사법개혁법 개정을 위한 이른바 ‘패스트 트랙’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청와대·민주당과 자한당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잘못이 없고 모두 네 탓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 제발 공부를 해서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위정자가 할 일”이라는 가르침을 깨닫기를 요구한다. 미중 무역전쟁 앞에 흔들리는 증시와 경제에 민심도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 본 기사는 <머니S> 제594호(2019년 5월28~6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