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 장애’(게임중독, 질병코드 6C51)를 포함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을 통과시켰다. 오는 28일 총회 전체회의에 보고 후 2022년부터 각 회원국에 권고안 형태로 전달할 계획이다. ◆정말 질병일까?
WHO는 게임이용 장애에 대해 크게 세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게임 이용시 시작시점, 빈도수, 강도, 지속시간, 중단, 맥락 등에 대해 조절이 어렵거나 ▲삶의 다른 흥미요소 및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고 ▲부정적 결과를 초래함에도 지속하거나 오래할 경우다.
관련 특성이 12개월 이상 명백하게 드러나거나 모든 진단요건을 충족하면 게임이용 장애로 진단할 방침이다. 증상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기간에 관계없이 게임이용 장애 진단을 내릴수 있다고 명시했다.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중독’의 특성을 게임이용에 대입하기는 모호한 부분이 많다. 중독의 의학적 정의는 유해물질에 의한 신체증상과 알코올, 마약 등 약물남용에 의한 정신적 의존증을 동시에 일컫는다.
게임이용을 정신적 의존증으로 분류한다고 해도 중독의 특성인 갈망, 남용, 내성에 대한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됐음에도 의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집행이사국인 미국도 총회를 통해 게임이용 장애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혀 WHO의 이번 결정은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ICD-11이 2022년 1월1일부터 발효되지만 과도기 5년을 제공하거나 필요시 연장한다’는 조건이 붙은 데는 이런 허점이 숨겨져 있었다.
◆국내에 도입되면 언제쯤?
게임과 질병에 대한 국내 주무부처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내세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이 정부가 육성하고 장려해야 할 문화산업인 만큼 행정·연구·전문가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반해 보건복지부의 경우 다음달부터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등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통계청은 문체부와 복지부의 의견을 반영해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부처간 견해차가 커 국내 도입여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현재 질병사인분류는 2015년 개정된 제7차 KCD에 따라 작성하며 관련 기준은 5년마다 개정되기 때문에 게임이용 장애가 반영되더라도 2026년부터 시행할 수 있다.
현재 문체부는 현재 게임이용 장애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세계시장에서 K-POP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관련 산업의 위축을 막기 위해서라도 WHO의 질병코드화를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게임이용 장애가 질병이 될 수 없는 이유로 중독 여부를 가르는 변수가 사회심리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총 2000명의 패널을 대상으로 한 사회과학 연구결과 청소년 게임이용 시간과 과몰입 정도는 매년 변화한다. 매년 50% 이상이 과몰입군에서 일반군으로 이동하며 10% 가량이 일반군에서 과몰입군으로 옮겨 간다.
5년간 한결같이 남아 있는 과몰입군은 1.4%에 불과했는데 정상군에서 게임과몰입군으로 이동하는 집단과 반대 조직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 변수는 학업 스트레스, 부모의 과잉기대 및 간섭, 자기통제력 등의 사회적 요소로 나타났다.
복지부의 경우 표면적으로 게임이용 장애를 강력히 반영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WHO 회원국이라면 권고안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총회 보고가 끝나기도 전 민관 협의체 구성계획을 세울만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KCD 반영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복지부가 “국내 게임이용 장애 현황과 이해관계자 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관계부처와 대응방향을 논의한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내부적으로는 2026년 게임이용 장애가 적용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게임산업 위축 불가피
국내 게임업계는 물론 학계, 문화, 예술계에서는 WHO의 이번 결정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할 경우 관련 산업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콘진과 게임업계 등에서는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로 인해 2조~5조원의 위축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체감 위축효과는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대중들에게 ‘게임=나쁜 것’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심어줄 수 있다. 특히 대중문화시설인 PC방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e스포츠도 중독을 유발하는 매개체로 낙인 찍힐 수 있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게임 자체가 질병이 아니라 중독을 치료하자는 차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업계 종사자나 대중들이 느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런 맥락과 궤를 달리한다. 질병이라고 규정할 경우 술이나 담배에 붙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종사자들이 체감하는 11조원의 산업 위축효과는 게임과 연관된 모든 부가사업의 순차적 단절 및 부정적 영향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이용 장애가 질병코드화가 국내 적용될 경우 산업에 초래할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KCD 개정이 시작되는 2026년까지 주무부처와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사행성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정부차원의 산업 육성안이 균형을 이뤄 게임의 산업·문화적 장점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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