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용 엔씨씨애드 대표. /사진=엔씨씨애드

“꼭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가짐과 절박한 심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퍼블릭 광고대행사 엔씨씨애드를 운영하는 심우용 대표는 내년이면 광고인의 길을 걸어온 지 20년째다. 심 대표는 후배 4명과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아등바등 버티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로 성장한 데다 권위 있는 국제 광고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숱한 위기를 넘어 현재에 이른 원동력으로 ‘마음가짐’을 꼽는다. 그가 말하는 ‘마음가짐’이란 무엇일까.

◆밑바닥부터 올라온 광고인의 길


대학 때 미술디자인을 전공한 심 대표는 졸업 후 광고회사 제작팀에서 근무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당시 경영위기를 겪었던 뉴코아, 쌍방울 등이 그가 근무했던 회사다. 이곳에서 광고제작 팀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IMF 위기로 1998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과감하게 회사를 나와 친한 후배 4명과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심 대표는 당시에 대해 “희망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워낙 나라 경제가 안 좋았고 당시 만 해도 광고는 모두 대기업 계열사가 일감을 장악했던 시절이라 눈앞이 캄캄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죠.”

지금은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지만 10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을 얻어 시작한 창업전선은 혹독했다. 겨울에 사무실에서 석유난로를 땠는데 유지비가 걱정됐음에도 차마 직원들에게 눈칫밥을 먹일 수 없다는 생각에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았다고 회상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그마한 독립 광고대행사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은 막막해 보였다.

그러던 그에게 한줄기 빛이 보였다. 정부 보조금을 지원 받아 중소기업을 알리는 패키지상품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 이를 통해 그는 기업의 광고 홍보와 CI·BI 디자인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며 터를 닦았다.

특히 그는 대기업 계열의 광고회사와 싸우기 힘든 상황에서 새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런 그가 주목한 시장은 퍼블릭(공공부문) 광고시장이다. 탄탄하고 오래가는 광고대행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판단해서다.

◆치열한 경쟁시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실력을 닦은 심 대표는 숱한 위기도 겪었다. 무한경쟁시대에 살다보니 경쟁업체의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이간질까지 경험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뜻하지 않게 경쟁업체의 견제를 받았다”며 “모두 오해에서 비롯됐지만 당시에는 큰 충격을 받아 이 일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고 씁쓸해했다.

그래도 그는 오뚝이처럼 쓰러지지 않고 버텼고 그의 가치를 외부에서도 인정받았다. 심 대표의 회사는 최근 종료된 ‘아시아-태평양 글로벌 스티비상’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종합광고대행’을 통해 공기업 이벤트 혁신상부문과 비영리기구·NGO 이벤트 혁신상부문의 금상 2개, 소셜미디어 마케팅 혁신상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글로벌 스티비상은 미국 스티비어워즈가 주최하는 국제행사로 비즈니스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며 “올해는 아시아와 태평양 16개국에서 약 900편의 광고작품이 출품돼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상을 3개나 타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앞서 지난해에도 강원도청의 연간 광고대행을 수주,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대회 종합홍보대행’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글로벌 스티비상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한 바 있는 그는 2년 연속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마음가짐, 그리고 가족

자기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쉼 없이 달려온 그는 광고 일을 하는 게 재밌고 적성에도 잘 맞아 밤새 일해도 지치지 않았다고 웃어보였다. 심 대표는 그 바탕에 남다른 ‘마음가짐’이 있었다며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나도 자존심이 세지만 상대방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췄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 이었다”며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결국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고 조언했다.

20년 가까이 묵묵히 광고라는 한 우물을 파며 열정을 쏟았지만 사실 심 대표는 어릴 적 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저는 부산의 바닷가에 살던 평범한 시골 소년이었어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누님 두분 사이에서 막내로 커 성격도 내성적이었죠. 저를 잘 아는 어릴 적 친구들은 제가 광고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의아하게 생각하며 오래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대요.”

친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20년 가까이 광고 일에만 매달린 심 대표는 가족 얘기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내 가족을 돌보지 못했다”며 “회사에서 소통을 강조했던 내가 정작 가족과 오랫동안 소통을 하지 못해 심리적인 거리감이 생겨 가족 해체 위기까지 겪었다”고 미안해했다.

이어 “지난해 결혼 28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만큼 그동안 일밖에 모르고 산 나 자신을 반성했다”며 “앞으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가정을 지키는 데도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6호(2019년 8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