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발생 이튿날인 지난달 1일 오전 구조대원들이 지하 수로에 고립된 작업자들에 대한 수색 및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DB

최근 현대건설의 현장 인명사고와 관련해 서울시의 공사 입찰제한 조치를 놓고 업계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건설현장 인명사고에 대한 지자체의 행정처분이 통상적으로 부당한 건 아니지만 경찰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 입찰제한이 통보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실책임주의 어긋나"

지난 7월31일 서울 양천구 신월 빗물저류 배수시설 확충공사 도중 작업자 3명이 지하수로에 수몰돼 숨진 이른바 ‘목동 참사’가 일어났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신월 빗물저류 배수시설은 양천구·강서구 일대 폭우 시 침수 피해를 대비해 만들어졌다. 시간당 95㎜의 집중호우에 견딜 수 있는 방재시설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주관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해 올 4월 시운전에 들어갔다.


사고 원인은 갑작스러운 폭우였다. 시설 수문으로 6만 톤가량의 물이 쏟아지면서 내부를 점검하던 협력업체 직원과 미얀마 국적의 또 다른 직원 두명이 지하 40m 수로에 갇혔고 뒤따라 들어간 현대건설 직원 1명까지 총 3명이 사망했다.

서울양천경찰서가 현대건설 등을 압수수색하고 사건 경위와 책임 소재를 수사하는 가운데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는 지난 10일 현대건설의 공공공사 입찰제한을 위한 청문회를 실시했다. 서울시는 현대건설에 사고 책임을 물어 공공공사 6개월 입찰제한을 공문을 통해 발송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수사 결과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취해진 입찰제한 조치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통상 수사가 끝나고 책임 소재와 과실 비율이 명확히 밝혀진 상태에서 행정처분이 이뤄지는데 이번 경우에는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수사 도중 입찰제한을 한 건 이례적인 경우”라면서 “이후 대응사항 등이 확정되지 않아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후 대응사항’이란 법원에 입찰제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낼 지 검토한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지금까지는 수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입찰제한이 이뤄진 사례가 없었고 그와는 별개로 대부분의 건설사가 입찰제한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하는데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비슷한 수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서울시는 관련내용이 확정되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문회 내용이 비공개라 자세히 말할 수 없다”며 “사고가 발생한 데 따른 현대건설의 소명을 듣는 절차였고 입찰제한 여부가 확정되는 건 다음달 초”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현대건설의 책임에 대한 명확한 수사 결과가 나올 경우 고용노동부 요청에 따라 영업정지 처분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중소 건설기업 회원으로 구성된 한국건설기술관리협회도 이번 공사의 책임감리를 수행한 3개 엔지니어링사에 같은 행정처분이 내려진 데 대해 서울시에 부당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협회 관계자는 “감리자의 업무소홀이 있었다고 해도 입찰제한 6개월과 안전사고 발생사항의 반영평가 5년은 과실책임주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다만 협회는 이번 사고에 대해 현장공사와 상관없이 현대건설과 양천구청이 시운전기간 동안 시설운영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자동개방한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현대건설 사옥. /사진제공=현대건설


◆발주처-시공사 책임 떠넘기기 우려
건설업계는 서울시의 이번 조치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이슈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공공사 입찰제한이 매출 등에 미치는 영향도 있지만 대기업 건설사 입장에선 이미지 타격이 더 중요한 문제”라며 “국감을 앞두고 인명사고가 이슈화되면 현대건설로선 부담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발주처인 서울시와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책임 소재를 두고 서로 다툼을 벌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번 사고는 2013년 7월 발생한 서울 노량진 수몰사고와도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노량진 배수지 지하 상수도관 부설작업 현장에서 한강 수위가 상승하며 작업자 7명이 숨졌다. 당시에도 발주처인 서울시 관계자와 현장소장 등이 법정에서 “하청업체가 현장 상황을 주도했다”는 식으로 사고 책임을 떠넘겨 비판을 받았다. 당시 책임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가 적용됐고 하도급업체 현장소장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가 국감에서 이슈화될 경우 서울시와 현대건설 모두 책임 추궁이 예상되는 만큼 행정처분 논쟁부터 상대의 잘못으로 몰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는 폭우가 예보된 상황임에도 작업을 강행했는지 여부와 비상탈출구 관리상태 등에 따라 확정될 전망이다. 배수시설은 총길이 3.6㎞ 폭 10m의 지하 터널구조로 일정 수위의 빗물이 모이면 자동으로 수문이 개방돼 배수가 이뤄진다.

현장소장에 따르면 작업자들이 점검에 투입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고 현대건설은 호우주의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고현장은 위험 시 긴급히 사용할 수 있는 튜브 등의 안전장비가 없었다.

시민단체 10곳은 한제현 서울 도시기반시설본부장과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등을 직무유기 및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1호(2019년 9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