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증권사들이 올해 중순을 전후로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섰다. 증시불황 여파로 주가 하락세가 이어지자 주가부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뿐 아니라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까지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증시불황에 더해 일부 증권사는 상반기 실적마저 부진해 주가부양책이 희석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이나 KTB투자증권은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하반기 들어 주가가 17%(9월23일 기준) 이상 폭락했다.
증권사들은 투자금융(IB) 사업 확대를 통해 상반기 증시 불황을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거래대금은 더 위축됐고 시장금리도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어서 전망도 밝지 않다. 핵심사업인 IB는 대형사 중심으로 판이 형성돼 중소형사는 상대적으로 더 고전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머니S DB
◆오너일가까지 자사주 매입 러시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5월 이후 회사나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주를 매입한 상장 증권사는 9곳으로 조사됐다.
키움증권은 올 6~8월 중 392억원, 대신증권은 4~6월 198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각각 매입했다. 신영증권도 6~8월 자사주 29억원을 사들였다.
오너일가의 자사주 매입도 활발했다. 원종석 신영증권 부회장은 8~9월 13억원, 유창수 유진투자증권 부회장은 7월 2억3650만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원 부회장은 신영증권 2대주주로 원국희 회장의 장남이며 유 부회장은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전문경영인도 주가부양에 힘을 보탰다. 임재택 한양증권 사장은 5월에만 8차례에 걸쳐 5억원 규모를 사들였다. 김원규 이베스트투자증권 사장은 5월부터 8월까지 총 1억6000만원, 최석종 KTB투자증권 사장은 5월과 7월에 총 7000만원 규모를 각각 매입했다. 8월에는 고원종 DB금융투자 사장이 8월 2150만원, 9월에는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이 1460만원의 자사주를 각각 매수했다.
회사나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부양을 위해서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를 우호지분에 매각하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경영권 방어에 활용되기도 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은 주주친화정책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라며 “증시가 좋지 못하다 보니 주가부양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적 부진에 주가부양책 희석
증권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선 것은 증시불황 등의 이유로 주가가 좋지 못한 영향도 크다.
업계 1위인 미래에셋대우는 9월23일 7670원에 거래를 마쳐 7월 초보다 6.2% 하락했다. KTB투자증권(-17.4%), 유진투자증권(-17.3%), 키움증권(-16.3%), DB금융투자(-11.1%), 신영증권(-6.3%), 대신증권(-5.4%), 이베스트투자증권(-4.8%), 한양증권(-4.4%) 등도 일제히 떨어졌다. 모두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폭(1.3%)을 크게 웃돈다.
주가 부진은 증시불황 여파가 가장 크지만 실적 부진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사주 매입에 나선 증권사 9곳 중 5곳의 상반기 순익이 전년보다 부진했는데 특히 주가가 폭락한 유진투자증권과 KTB투자증권의 실적은 유독 더 나빴다.
유진투자증권은 올 상반기 236억원, KTB투자증권은 17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각각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9.2%, 17.7% 각각 감소했다. 이 밖에 대신증권(-23.6%), DB금융투자(-4.5%) 등도 순익이 하락했으며 회계연도를 사용하는 신영증권의 올 1분기(4~6월) 순이익도 27.7% 크게 줄었다.
증권사들은 증시 불황에도 투자금융(IB) 부문에 집중한 효과를 거두며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보다 5.2% 증가했지만 이들 증권사는 증시불황과 실적부진의 악재가 겹치며 주주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전망도 불투명… 대형-중소형 ‘온도차’
하반기 전망도 좋다고 보기 어렵다. 9월 들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하반기 들어 증시 불황으로 거래대금이 대폭 줄어 리테일(소매) 부문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올 상반기 월평균 거래대금은 9조43000원대를 기록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8조50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채권매도에 따른 이익을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 하락기에는 보유채권 가치가 상승하고 이를 매도해 일회성 이익을 내기도 하지만 국고채 금리는 글로벌 금리하락에도 9월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9월 주가지수 상승에도 일평균 거래대금은 7~8월과 차이가 없는 수준인데 코스피와 코스닥 회전율이 역사적으로 낮은 구간에 머물러있다”며 “9월 가파른 시장금리 반등으로 8월 대비 채권운용 관련 이익이 축소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대볼 만한 부분은 상반기 효자역할을 했던 투자금융(IB) 사업이다. 다만 기업공개(IPO), 부동산금융, 항공기·선박 등 대체투자 부문 등 주요 사업군에서 대형사가 강세를 보이는 만큼 회사 규모에 따라 온도차는 불가피해 보인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증권업계는 자본 투자형 모델로 바뀌면서 브로커리지 대신 IB수수료 및 자산활용 수익 비중이 크게 증가해 주식시장 업황에 대한 민감도는 낮아졌다”며 “투자형 모델은 대형 증권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고 중소형사보다 IB수수료 변동이 낮아 대형-중소형사 간 양극화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2호(2019년 10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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