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1.0~1.25%로 내리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졌다. 미 연준이 정례회의를 열지 않고 금리를 내린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미 연준은 0.25%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하는 일명 ‘그린스펀의 베이비스텝’을 밟았지만 이번엔 0.5%포인트 ‘빅컷’을 단행했다. 이로써 2018년 0.5%포인트까지 벌어졌던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상당기준)는 ‘제로’가 됐다.


◆‘코로나19’ 쇼크 긴급처방… 트럼프 또 압박

미 연준은 이 같은 금리 인하 결정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를 꼽았다. 미 연준은 성명서에서 “미국 경제 펀더멘털은 여전히 강하다”면서도 “코로나19가 경제 활동에 점차 진화하는(evolving) 위험을 가하고 있다”며 “완전고용과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금리를 0.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이어 “연준은 경제 전망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며 “경제 지원을 위해 적절하게 도구를 사용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준금리 인하 발표 직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금리 인하를 추가 주문했다. 그는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는 점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평등한 입장에서 경기하지 않는다. 미국에 공평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침내 연준이 (과감한 기준금리 인하를) 주도할 시간이다. 보다 완화하고 낮추라”고 요구했다.

금융시장에선 미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달 17~18일 예정된 미국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하 시그널을 보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극약처방,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적인 공조가 예정돼 있는 만큼 이번에도 정책적 노력은 금융시장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말했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4월에도 금리를 더 낮추고 상황에 따라선 이에 그치지 않고 상반기 중 추가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한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지난해 10월 금리 인하를 마지막으로 4개월째 동결이다.

사실상 미 연준이 금융위기 대응 수준의 선제적 처방을 내놓으면서 한은도 조만간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일본 중앙은행과 영국 영란은행,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잇따라 특별 성명을 내며 미 연준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호주 중앙은행도 지난 3일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50%로 인하했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을 선언하면서 한은의 신중론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 총재는 “앞으로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 운영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하 등의 정책여건 변화와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전망 급부상, 금융시장 대전환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기준금리는 연 1.00%로 떨어져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선다. 금리의 하한선을 의미하는 ‘실효하한 금리’가 암묵적으로 0.75~1.00% 수준에 도달하는 셈이다.

한은의 금리 인하 효과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낸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2.0%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하가 유동성을 극대화시켜 경제심리 회복에 도움이 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앞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1%로 0.2%포인트 낮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0%로 내려 잡았다.
정부의 추경 효과도 커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진다. 신얼 SK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쇼크를 입은 경기를 살리려면 재정확대에 통화정책의 공조는 필수”라며 “4월에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증시에는 금리 인하가 호재로 작용한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자심리도 살아나고 있다. 지난 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5.18포인트(2.24%) 오른 2059.33으로 장을 마쳤다. 앞서 7거래일 연속 순매도에 나섰던 외국인들이 1527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피는 전날 미국 다우지수가 2.94% 하락한 영향으로 오전에는 약세를 보였지만 외국인의 매수세가 늘어나며 상승 반전했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가 내려가면서 달러화도 약세를 보였다. 지난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7.4원 내린 1187.8원에 마감했다.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나면서 비교적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한국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다. NH투자증권 노동길 연구원은 “국내 확진자 수가 고점을 통과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정부의 추경안 발표도 한국 증시 반등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반면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지난해 12월 기준 16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잠잠하던 부동산시장의 수요를 자극할 것이란 지적이다.

저금리로 시름하는 보험업계는 장기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보험사의 경우 보험료를 국고채 및 회사채에 투자한 운용수익률로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만 저금리 기조로 국고채 금리가 꾸준히 하락해 수익도 감소하고 있어서다.

생보업계 맏형 삼성생명은 4월 예정이율 인하를 예고한 상태다. 예정이율이 낮으면 보험료가 비싸진다. 통상 보험사들이 예정이율을 0.25% 낮추면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보험료는 5~10% 오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운용자산수익률은 3%대에서 꾸준히 하락 중”이라며 “사상 최저금리까지 내려가면 보험료 인상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5호(2020년 3월10~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