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좀 어때요?”
“온몸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숨도 차고요. 이렇게 지독한 통증은 난생처음이에요…”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그래도 이렇게 집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으니…”
“다녀올께요…”
“온몸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숨도 차고요. 이렇게 지독한 통증은 난생처음이에요…”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그래도 이렇게 집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으니…”
“다녀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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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병원 내과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 병조국은 뚝 떨어지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말을 서두른 뒤 문을 나섰다. 그가 아내와 출근 인사한 뒤 현관문을 나서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했다. 자기 방으로 가서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입던 방호복을 벗고 정상적인 출퇴근용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고 여느 때와 똑같이 차림 했음을 꼼꼼히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근처에서 혹시 마주칠지 모르는 이웃들에게 의심 살 만한 꼬투리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병조국 의사가 이렇게 복잡한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달포 전에 코로나19에 걸렸기 때문이다. 고열과 기침을 호소하는 아내가 코로나19 습격에 감염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검사해봤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은은한 미소 대신 잔인한 ‘썩소’를 보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결단을 내렸다.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대신 집에서 자신이 치료하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시켜도 음압병동에 격리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치료제가 없는 현실을 감안했다. 자유로운 집에서 마음 편하게 자신이 치료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증상이 갑자기 악화돼 응급치료가 필요할 경우 산소호흡기나 에크모(ECMO : 환자 몸 밖으로 혈액을 빼낸 뒤 산소를 공급해 다시 몸속으로 투입하는 의료장비)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은 감수하기로 했다.
병원 대신 집에서 자신이 돌보겠다는 얘기를 하자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하는 동의였다. 아내를 안방에 격리시켰다. 거실에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자신은 거실 건너편에 있는 방에서 기거하기로 했다. 병원에 출근할 때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해서 집에 있을 때는 병원에서 입는 방호복을 착용했다. 퇴근하면서 코로나19 증상을 약화시킬 수 있는 약을 챙겨 아내에게 투여했다. A형독감(신종플루) 치료약인 타미플루, 에이즈 치료제로 쓰이는 항바이러스제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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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병조국 의사의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시작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약을 먹은 아내는 열이 내리고 통증도 줄어들었다며 밝게 웃었다. 하지만 야속한 게 바이러스였다. 정식 치료제가 아닌 다른 항바이러스제를 먹은 뒤 잠깐 동안 증세가 좋아졌다가 약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증세가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요즘은 거의 걸리지 않지만 50년 전만 해도 독감처럼 흔했던 학질과 비슷했다. 학질(瘧疾, 말라리아)은 여름에도 몸을 벌벌 떨 정도로 열이 나고 아픈 병이다.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포악스런 질병이라고 해서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었다.‘동의보감’에 자세한 설명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처음 발작할 때는 먼저 솜털이 일어나고 하품이 나며 춥고 떨리면서 턱이 마주치고 허리와 잔등이 다 아프다. 춥던 것이 멎으면 겉과 속이 다 열이 나면서 머리가 터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갈증이 나서 찬물만 마시려고 한다.” 더욱 환장할 노릇은 하루에 한번씩 또는 하루 걸러 때로는 이틀이나 사흘 걸러 열이 나고 아프다는 사실이다. 다 나은 것 같다가도 느닷없이 몰려오는 열과 통증에 앓는 사람은 물론 간호하는 가족도 진저리를 친다. 적혈구에 기생하는 말라리아 원충들이 적혈구 안에서 증식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적혈구를 파괴하며 한꺼번에 쏟아짐에 따라 주기적으로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한번 걸리면 고통이 심한 데다 치료도 쉽지 않아 ‘학을 뗀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지인에게서 병조국 의사와 그의 아내 얘기를 들은 한조국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남편인 의사가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고 집에서 자가격리치료를 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의사가 ‘병원에서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명제가 사회에 던질 풍파는 적지 않을 것이었다. 의사 자신이 믿지 않으면서 코로나19 감염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현실. ‘병원에 가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집에서 자유롭게 견디자’고 하는 현실.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인의 말을 터무니없는 유언비어(流言蜚語)나 가짜뉴스라고 폄하하기도 힘들었다. 지인이 유언비어를 퍼뜨릴 정도로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 데다 그의 말이 매우 구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백주 대낮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비록 믿을만한 지인이지만 이번만은 그의 말이 유언비어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의 바람을 위반하기라도 하듯 그의 뇌리엔 55년 전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 가물가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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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계절, 서너 살의 어린 한조국은 방에서 앉았다 일어서려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입에선 “아야 내 다리. 내 다리가 왜 이러지? 힘을 쓸 수가 없네…”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들에 나가려던 엄마가 그 말을 흘려버리지 않고 아버지를 불렀다. 당시 ‘소아마비가 유행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아버지는 동네 제일 부잣집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와서 한조국을 뒤에 싣고 천안으로 달렸다. 가족이 아플 때마다 한약을 지어다 먹던 명제한의원 원장이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를 1주일 안에 데려오면 완치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페달을 힘껏 밟았다.덕분에 한조국의 두 다리는 멀쩡해졌다. 그 원장의 침술과 한약이 특효를 발휘한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일시적인 다리 저림에 호들갑을 떤 것인지는 몰라도…. 한조국은 그때부터 ‘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은 맹장염과 뼈가 부러진 것 등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근거 없는 편견’을 갖고 있다. 병나지 않게 평소에 건강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병에 걸린 뒤 병원에 가도 고칠 수 있는 병이 많지 않다는 소신 아닌 소신이었다. 병조국 의사가 코로나19에 걸린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고 자가격리치료를 하고 있다는 말은 그런 편견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영 개운하지 않았다.
한조국은 아내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라고 물어봤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의학지식이 많은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다.
“코로나19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그 의사의 판단이 옳을 수 있어요…”
아내의 말은 그의 놀라움을 더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의사 아내를 안방에 철저히 격리한다고 해서 이웃에 전염되는 것을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을까. 그에 앞서 내과의사의 그런 판단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조국은 그가 들은 말이 그저 근거 없는 헛소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3호(2020년 5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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