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줄 왼쪽 4번째)김이배 제주항공 대표. 아시아나항공 출신으로 30여년 간 항공업계에 몸을 담은 재무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다만 아시아나항공 회계쇼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제주항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흔들리는 항공업계에 사장단 교체가 단행됐다. 그 주인공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1위인 제주항공. 애경그룹은 2017년부터 제주항공을 본격적으로 이끌며 호평을 받던 이석주 사장의 임기가 남았음에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앉혔다.

마케팅 대신 재무전문가 선택

애경그룹은 코로나19로 위기에 직면한 항공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장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석주 사장의 후임인 김이배 대표는 6월1일부로 새롭게 제주항공을 이끌기 시작했다. 1965년생인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했다. 그는 30년 넘게 아시아나항공에 몸을 담으며 전략경영팀 팀장, 미주지역본부 본부장, 경영관리본부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 전 대표와 김 대표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상이하다. 마케팅 전문가로 평가받는 이 전 대표와 달리 김 대표는 재무 전문가로 불린다.
제주항공 내부에서는 놀랍다는 반응도 나온다. 애경그룹의 사장단 교체 발표 후 제주항공의 한 내부직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이석주 사장이 갑작스럽게 떠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이석주 사장은 공개석상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만 내부직원들을 알뜰히 챙겨 내부직원들의 평이 좋았다는 후문이다. 상대적으로 상하구조가 명확한 아시아나항공에서 오랫동안 재직했던 김 대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바닥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항공사의 경우 LCC보다 상하관계가 엄격하고 수평이 아닌 수직구조가 강한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일까. 김 대표는 지난 1일 취임 후 첫 행보로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의 스킨십에 나섰다. 애경그룹이 재무 전문가인 김 대표를 선임한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제주항공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올 1분기 매출액이 전년대비 42% 감소한 2281억원에 머물렀다.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각각 638억원, 995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제주항공 2020년 1분기 경영실적.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해외 각국의 입국제한으로 여객수요가 급감하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표=김은옥 기자

코로나19로 여객 매출이 급감한 것이 컸다. 기재(비행기 수)를 대폭 늘리며 공격적인 외형성장을 해온 제주항공은 타격이 컸다. 이 기간 항공기는 전년대비 5대가 늘었지만 국제선 비운항으로 가동률이 급감했다. 항공기 가동시간은 대당 9.9시간으로 전년대비 4.5시간 줄었다. 탑승객수는 196만7000명으로 전년대비 42% 급감했다. 여객수요가 줄면서 탑승률은 전년대비 15.9% 감소한 74.5%에 머물렀다.
최근 제주항공은 비용절감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보유엔진을 매각한 뒤 리스로 임차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항공사는 엔진고장 등에 대처하기 위해 항공기 엔진의 여분을 비축해둔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1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추진 중이다. 주식을 팔아 자금을 확보해 운영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제주항공은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2월부터 위기를 직감하고 인건비 절감에 나선 상태다. 당시 이석주 대표는 “경영진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임원급 인사의 월 급여를 30% 이상 반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직원들도 순환휴직에 돌입한 상태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항공기 엔진의 리스는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순환휴직 등 위기극복을 위한 자구안 마련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계쇼크 이력 극복할까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재무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에 이견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김 대표의 이력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존재한다. 김 대표는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시발점인 ‘회계쇼크’ 사태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물러난 인물이다. 재무전문가라는 평을 받는 김 대표에게 회계문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

지난해 3월 아시아나항공이 공시한 감사보고서가 감사의견 ‘한정’ 판정을 받으면서 논란이 됐다. 아시아나항공 측이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운용 리스 항공기의 정비충당부채 등과 관련된 자료제출이 미흡했던 것이다. 새롭게 변경된 회계기준으로 리스비용이 부채로 잡힌다. 이 경우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아시아나항공 측은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의 감사의견 ‘한정’ 사태는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는 아시아나항공의 주식거래가 이틀 동안 중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한국거래소는 아시아나항공이 2017년 발행한 600억원 규모의 회사채에 대한 상장폐지를 준비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시아나항공은 황급히 재감사를 받아 감사의견 ‘적정’으로 전환시켰지만 당초 공시한 것보다 재무상황이 나빠져 기업의 신뢰도를 하락시켰다.


아시아나항공 회계논란의 후폭풍은 거셌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신용평가사들이 앞다퉈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의 하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1조원대 자산유동화증권, 회사채 등을 곧바로 상환해야 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SOS’를 요청했지만 자구안 제출에도 거절당했다. 결국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해 인수자 물색에 나섰다.

제주항공의 새로운 수장이 된 김 대표는 제주항공의 회생과 아시아나항공 회계쇼크 책임자라는 두 가지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 제주항공의 옷을 입은 김 대표가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항공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주항공의 수장에 올라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전임 대표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자신을 둘러싼 우려 등을 극복하고 안팎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8호(2020년 6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