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도 인동초 일몰 /사진=홍기철기자

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사흘 앞두고 전남 신안 하의도를 방문했다. 하의도는 '민초의 한(恨 )이 서린 섬, 정의로운 섬, 대통령의 고향'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이 섬은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57.6㎞떨어져 있다. 대야도, 장병도, 신도, 장재도, 개도, 죽도, 비도 등 많은 자섬들이 하의도를 에워싸고 있다. 육지와 연도되지 않아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하의도는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1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부패 권력에 맞선 '절개의 섬' 수호천사가 강림하다

하의도 선착장 앞 천사상 /홍기철기자
지난 16일 하의도 선착장에 들어서자 해안가 쪽으로 천사상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신안군은 앞으로 1004점의 천사상을 세울 계획인 가운데 얼굴 모양새 등 각기 다른 천사상 318점이 현재 하의도에 자리하고 있다. 울타리와 지붕이 없는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다.
천사상은 프랑스 대표적인 조각가 로댕의 고향에서 '리틀 로댕'으로 불린 세계적인 조각가 최 바오르의 작품들이다. 최 작가가 국내에 정착하기 전 고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그의 '사랑과 평화'에 대한 열정에 공감해 DJ의 고향 하의도를 수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맑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하의도가 마치 '천사의 안식처'라는 영감을 얻어 '세계평화의 성지'로 조성하려 했다. 평화를 하의도에 정착시키고자 한 최 작가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다.

농민항쟁 정신 김대중 대통령 민중화가 홍성담까지 이어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의도는 항쟁의 섬이었다. 조선 중기 부패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 하의도 농민의 정신이 훗날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이곳 하의도에서 배출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민중화가' '5월의 화가' 등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홍성담 작가는 하의 3도 지금의 신의도 출신이다. 세계 3대 양심수, 뉴욕의 국제 정치외교전문지 포린 포리시 '세계를 뒤흔든 100인의 사상가'에 선정된 홍 작가의 고향에 동아시아 인권평화 미술관이 건립될 계획이다.

미술관에는 하의3도 토지항쟁과 암태도 소작쟁의, 아시아의 인권, 평화 미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처럼 하의3도의 불의에 굴하지 않은 절개는 후세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사진=홍기철기자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과 기념탑이 있어 방문했다. 하의 3도는 하의도 본도와 신의면에 속한 상태도와 하태도를 말한다.
이곳 농민들의 토지 탈환 투쟁의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랜 기간 지속됐다. 분쟁의 씨앗은 임진왜란  이후 하의3도 주민들이 개간한 토지 20결(약 8만평)을 인조가 풍산 홍씨 가문에 혼수품으로 4대손까지 세금 징수권을 하사한 것이 단초가 됐다.

4대가 지난 후 땅과 징수권을 풍산 홍씨가에서 반환해야 했지만 오히려 하의도 전체 토지를 소유해 불법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면서 농민항쟁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항쟁은 권력층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지속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해방 후 미군정때에는 일본인 토지가 군정에 귀속됐으며 1956년 '소유권 무상환원'이 아닌 불하 형식으로 하의3도 농민들에 토지의 권리가 되돌아 오기까지 300년이 걸렸다. 억울한 민초들의 한(恨)이 느껴져 절로 숙연해졌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내부 /사진=홍기철기자
기념관에는 하의도 농민운동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역사의 땅', '항쟁의 땅','평화의 땅' 등 3구역으로 나눠 토지 항쟁의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바로 옆 마당에는 토지탈환운동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인의 공덕비다. 고노오 토나로스케 변호사가 하의3도 농지 소유권이 농민에 있음을 확인해준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도움이 참 아이러니하다.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 그리고 덕봉강당

하의도 후광리 김대중대통령 생가 /사진=홍기철기자
농민운동기념관 위쪽 후광리에는 다섯 차례 옥살이, 55차례 연금, 10여년 망명생활 등 고통의 세월을 딪고 제15대 대통령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생전의 김 대통령이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 그것이 용기'라고 남긴 어록은 생가 뒤편 공원에 글귀로 남았다. 까까머리 교복을 차려 입은 모습에서 기호 6번을 달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화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후 김정일 위원장과 나란히 선 고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들이 생가 마당에 전시돼 있다.
김대중대통령이 유년시절 수학했던 덕봉서당/사진=홍기철기자

김 대통령이 유년 시절 공부를 했던 서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덕봉산 아래에는 덕봉강당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시대의 마지막 유학자 초암 김연선생의 유적지다.
높은 학식과 절개를 겸비했던 김연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 산중으로 은둔했다고 한다. 고향 주민들의 부탁을 못 이겨 은거한지 8년 만에 하의도로 돌아와 '봉람제'라는 서당을 열었고 1934년 하의도에 초등학교가 생기기 전까지 김 대통령이 이곳에서 수학했다.

후학들이 늘자 제자와 유림들이 선생의 집 후원에 덕봉강당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훗날 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 쇠약한 몸으로 휠체어에서 내려 스승에 헌화 참배하며 예를 갖췄다는 일화도 구전되고 있다.

하의 3도 가볼 만 한 곳, 먹거리는

하의도 큰바위 얼굴 /사진=홍기철기자
하의3도는 천일염으로 유명하다. 섬 곳곳에 염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신도해수욕장과 모래구미해변이 있다. 삼도대교를 넘어가면 작은 규모의 황성금리해수욕장 나온다.
탁 트인 바다에서 불어 오는 해풍을 맞으며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모래구미 해변 인근의 큰바위 얼굴도 명소다.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나란히 서 큰 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 곳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별명에서 따온 인동초 팬션에서 바라본 먼 바다의 일몰도 장관이다.

팬션 잔디 광장에 길게 늘어선 천사상 뒤로 붉은 광채를 남긴 후 산허리로 해가 모습을 감쳤다.
하의 인동초 앞 천사상 /사진=홍기철기자
갯바위에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끊이 않고, 시원한 바닷바람은 한여름 불볕더위를 잊게 했다. 하의도는 싸이클 동호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1004섬 자전거길'은 자전거에 위협이 되는 자동차가 거의 없고 색다른 자연경관과 독특한 문화를 지닌 섬에 8개 코스를 조성했다.
하의신의 코스는 8번째 코스로 하의옹곡 선착장-농민운동기념관-김대중대통령생가-큰바위얼굴-신의 굴암리항- 황성금리해수욕장- 구만 노임임도- 상태선착장- 신의 동리선착장까지 78㎞구간으로 만들어졌다.

입소문을 듣고 하의도를 방문한 대구에서 온 중년의 라이더들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신안하의도 특산물은 천일염과 낙지, 우럭, 전복, 뻘낙지, 고구마, 고추, 대파, 양파, 마늘 등이 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하의도는 부정한 권력에 타협하지 않은 의(義)에 고장이며 역사의 현장이다"면서"김대중 대통령의 정신과 삶을 계승하는데 앞장 서 전국민들과 세계인들이 찾는 평화의 섬, 하의도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섬 관광의 애로사항인 배편 문제는 이곳 하의도에선 신경을 안 써도 된다. 하의도와 연도된 신의에 야간 항로가 개통돼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신의도 상태에서 저녁 10시5분에 출발해 안좌 복호항에 11시5분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