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세상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만일 내가 후자를 조절하려 든다면 나는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고, 그 결과 괴로워할 것이다. 노예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50-135년)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얻은 지혜를 글로 남겼다. 그의 글로 엮은 책은 고대 그리스어로 '엔케이리디온'(encheiridion), 즉 '손쉽게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하는 것'으로 불렸다. 인간이라면 매 순간 손에 들고 스스로 상기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몸에 손쉽게 지니고 다니는 무기 '단검'을 '엔케이리디온'이라고 불렀다. 에픽테토스는 엔케이리디온을 은유적으로 사용했다.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보장하는 단검과 같은 지혜로 사용했다. 나는 엔케이리디온을 내 손에 들어와 항상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인생수첩'이라 번역하고 싶다.
에픽테토스는 '인생수첩'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조절할 것들이 있고, 우리가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만사에 대한 의견, 삶의 목적, 욕망, 혐오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은 재산, 명성, 권력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혜는 이 둘을 구분해 조절할 수 있는 것들을 수련해 평정심과 행복을 찾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고 일생 수고하다 십중팔구 씁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인생에서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사고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혹은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고 자체가 아니라 그 사고를 대하는 나의 태도다.
지난 8일, 울산에 있는 33층 주상복합건물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TV 화면에 비친 화재현장은 초현실적이었다. 외장재를 타고 불길이 번져 하늘까지 연소시킬 태세였다. 1971년 명동에서 일어난 대연각 호텔 화재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는 이 안타까운 화재가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해 코로나19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국민을 절망이란 블랙홀로 빨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3시간 후에 놀라운 소식이 우리에게 전달됐다. 소방관들이 그 무시무시한 불길을 잡았고, 사망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방관들은 화재신고를 접수하자마자 5분 후에 화재현장에 도착했고, 30분 안에 '소방력 대응 2단계'로 신속하게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나섰다. 소방관들은 화마에 불타는 건물 안에 투입됐고, 가가호호 방문해 한 생명도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경주했다. 그들에겐 생명을 구하는 일이 소방관으로 해야 할 의무 이상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구조에 나선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은닉돼 평상시에는 발휘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발현시킨다.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그것은 정치-경제 분야의 선심성 정책이나 지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낯선 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자신의 가족처럼, 더 나아가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연민이다. 연민이란 삶의 소중한 원칙을 마음의 수첩에 간직한 사람은,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가족을 구하는 간절한 노력이며, 나아가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는 숭고한 일로 여긴다.
끔찍한 사고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은 울산 화재현장에 투입된 이름 모를 소방관들처럼 '연민'이란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조하는 주민들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여겼다. 로마시대 스토아철학자들은 이런 마음을 그리스어로 '심파테이아'(sympatheia)라고 불렀다. '심파테이아'는 흔히 연민 혹은 자비로 번역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이 광활한 우주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섭리의 한 부분이다. 만일 손가락 하나를 다친다면, 온몸이 그 아픔을 공유한다. 연민이란 그런 고통을 공유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연민은 불쌍하고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가족처럼, 나아가 자신처럼 여기는 실력이다. 연민은 상대방에 대해 단순히 불쌍하다는 감정을 넘어서, 그 대상이 더이상 불쌍하지 않도록 진심으로 헌신하는 행동이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VI.38에서 다음과 같이 연민을 정의한다: "종종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상하십시오. 만물은 서로 얽혀있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만물의 수축과 팽창, 마음속에 있어나는 연민의 동요는 만물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연민은 자기자신을 이기심이라는 경계로부터 탈출해 저 높은 경지로 '줌-아웃'해 관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한다. 줌-아웃은 에픽테토스가 말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부, 명성 그리고 권력의 유혹을 약화시키고, 1인칭과 2인칭, 나아가 1인칭과 3인칭의 구별을 점점 모호하게 만들어 결국 하나로 융합한다. '나는 나'일 뿐만 아니라 '나는 너'이며 '나는 결국 그것'이 된다. 내가 네가 되는 과정이 연민이며 내가 그것이 되는 깨달음이 해탈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부탁으로 우주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서 600억km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 극소의 점 '지구' 사진을 전송했다. 이 창백한 푸른 점이 우리가 아웅다웅 사는 인생무대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물이었다. 그 후 알 수 없는 신비로 육체와 정신을 지닌 인간으로 잠시 살다, 자신도 예약할 수 없는 시간에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번 울산 화재사건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은 인간이 자신의 심연에 은닉한,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감춰져 있는 연민을 통해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연민은 코로나 시대 인간이 수련해야할 최선의 저력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숨겨진 연민을 깨운 적이 있습니까? 그 연민을 낯선 자에게 베푼 적이 있습니까? 지구라는 푸른 창백한 점에서 의미가 있는 아름다운 삶의 문법은 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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