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감에는 동티모르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군산 앞바다의 섬 개야도에서 하루 평균 15시간 쉼 없이 일하며, 임금 체불까지 당했던 실태를 고발했다.
개야도 사례처럼 임금 체불, 강제 노동 심지어는 살해 협박과 감금까지 당했다는 이주 노동자의 증언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고도 이주노동자들은 마음대로 일터를 바꿀 수 없다. 사실상 사업주의 승인 없이는 일터를 바꿀 수 없는 정부의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노예'처럼 부리고 감금당해도 '일터' 못바꾸는 이주노동자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열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근거해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허가가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사용자의 허가가 없을 때는 본인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직을 원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이주노동자가 사용자 허가 없이 사업장을 이탈할 경우 '미등록' 신분이 돼 사실상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국내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제의 이런 허점을 악용해, 이주노동자에게 노동 착취와 인권침해를 일삼고 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베트남 노동자 A씨는 회사에 취직해 용접일을 했다. 하루 몇시간씩 계속 용접가스를 마시며 일을 하다보니 만성비염을 앓게 됐다. 일을 한지 6개월이 지나서는 비염으로 숨을 못 쉴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A씨는 사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 사업장을 바꿔주겠다고 약속한 사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A씨가 이에 항의하자 사장은 출근카드를 감추고 일을 시키지 않았다. 임금도 주지 않았다.
사장은 급기야 A씨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환자로 몰아 감금까지 했다. 사장은 정상체온인 그에게 강제로 코로나19 검사를 시키더니 격리를 해야 한다며 창고에 가뒀다. 사장은 창고 문 앞에 그의 이름과 함께 '코로나19 자가격리 장소 출입금지'라는 종이를 써 붙였다.
임금도 주지 않고 초과 근무를 시키면서, 필요할 때마다 다른 농장에 강제로 보내 이주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린 사례도 발표됐다.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B씨는 지난 2017년 입국해 밀양에서 깻잎을 심고, 수확하는 일을 했다. 그는 하루 8시간을 일하고, 2시간의 휴게시간을 약속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사업주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하루에 10시간 일을 시키면서 초과 노동에 대해서는 수당도 주지도 않았다.
소속된 농장이 아닌 이웃 농장에 강제로 보내 일을 시키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이를 거절하면 갑자기 일을 시키지 않고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며 임금을 삭감했다.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면 사업주가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사실상 사업주의 허용을 받아야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단 걸 악용해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네팔 출신 B씨는 200만원을 요구하는 사장에게 결국 150만원을 주고서야 농장을 옮길 수 있었다. 금속공장에서 일하던 네팔출신 C씨는 사장에게 50만원을 주고서야 사업장을 변경했다.
◇노동부 "사업주 허가 없어도 이직 가능"…실제론 사업주의 계약종료 인증 요구
이주노동인권단체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고용허가제에 대한 비판과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해명 자료를 수차례 냈다. 외국인노동자가 이직을 하려면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과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 취업활동기간 중 3회, 재고용의 경우 5회까지 사업주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 이직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이런 해명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우 소장에 따르면 지난 6월 충남 아산시에서 이주노동자가 산재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회사에서 사망한 노동자와 함께 일했던 필리핀 이주노동자는 친구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직장을 바꾸기로 했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는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를 근거로 자발적 직장 이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고용센터를 방문해 이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신청을 도왔다.
그러나 고용센터에서 돌아온 답은 '회사 측에서 고용변동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회사에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확인을 해줘야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단 것이었다.
우 소장은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근로간계의 종료가 불가능한 상황임에 분명한데도 고용센터는 '근로관계 종료'가 확인돼야만 직장 이동을 시켜주겠다고 한다"며 "결국 이주노동자는 자발적인 직장 이동을 할 수 없음에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직업선택과 변경의 자유가 있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로 노동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해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계속해서 투쟁해왔다"며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어 오는 25일 오후 2시를 시작으로 오는 11월부터 매월 셋째주 일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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