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45세이던 1987년 삼성 회장으로 취임해 연 매출 10조원대에 불과했던 회사를 반도체·스마트폰·TV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발돋움하게끔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1987년 공식적으로 삼성그룹 총수로 취임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전체 매출은 10조원에 불과했지만 33년이 지난 현재는 삼성전자의 연 매출만 200조원을 넘어설 만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특유의 공격적이고 과감한 결정을 앞세운 승부사 기질로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현지 주재원과 임직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포다.
이는 삼성전자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모두 잊고 새로운 품질과 서비스를 앞세워 글로벌 ‘패스트 무버’로 나아가자는 이 회장의 결단이었다.
이 회장이 ‘품질 경영’을 강조했던 또 다른 사례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란 문구를 내걸고 불량 휴대폰 10만대 이상을 동시에 불태우도록 지시했다.
이날 이후 삼성은 휴대폰 품질 개선과 신기술 개발을 앞세워 2010년대 빠르게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해 현재까지 세계 1위 자리를 유지 중이다.
이 회장은 삼성을 국내 1위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공이 있지만 ‘정경유착’에 따른 부정적 평가도 받는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첫 검찰 조사를 받았던 이 회장은 불구속 기소되며 실형을 피했다.
이듬해에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했고 1997년 사면복권돼 1998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2000년대에는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해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이 부회장은 당시 물려받은 CB를 통해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고 현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거쳐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2009년 대법원은 배임죄를 적용한 원심을 깨고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05년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성 X파일’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차명계좌와 1000억원대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난 이 회장은 쇄신안 발표 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다시 현업에서 퇴진했다.
이후 이 회장은 평창 올림픽 유치전을 이유로 2009년 12월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고 2010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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