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한국 재계 큰 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그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 1942년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른셋 나이에 두 형들을 제치고 후계자로 지목됐다. 1987년 선대 회장 사망 후 회장으로 취임해 27년간 삼성 그룹을 이끌어왔다. 한때 형인 고 이맹희 전 CJ명예회장과 재산권 다툼을 겪는가 하면 비자금 조성 의혹과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불거진 파열음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일궈온 경영 성과만큼은 명백하다. 국내 대표 수출 효자로 자리매김한 반도체·휴대폰·TV 등은 모두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1987년 12월1일 회장 취임사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취임할 당시 그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만 해도 이 외침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46세 이른 나이에 삼성그룹을 이끌게 된 어린 회장의 목표가 세계 그리고 ‘초일류’에 향해 있다는 것 자체에 의심을 섞는 시각이 더 많았기 때문.

남다른 카리스마… 불량 휴대폰 15만대 불태워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주요 지표 변화. /그래픽=김은옥 기자
하지만 이 회장은 끝내 이 약속을 지켜냈다. 그 취임 일성은 27년 세월 속에 하나 하나 실현됐고 삼성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무대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삼성 관계자 역시 이건희 회장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킨 인물로 추켜세운다.
그가 이룩한 경영성과는 숫자로 보면 더 놀랍다.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다. 영업이익은 2000억원 수준에서 72조원으로 369배 늘었고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이런 외형적인 성장 외에도 이 회장은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가 하면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고 내실 면에서도 세계적인 기업 면모를 갖추도록 노력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이다.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당시 “마누라와 자식 빼놓고 다 바꿔보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5년엔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15만대에 달하는 휴대전화 불량품을 불태운 ‘휴대전화 화형식’ 역시 이 회장의 카리스마를 상징했던 일화다. 이후에도 이 회장의 신경영은 계속됐다. 그는 2003년 ‘천재경영론’에서 2010년 ‘위기론’으로, 취임 25주년인 2012년엔 ‘창조 경영’ 등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변혁을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삼성은 1997년 한국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불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 기업으로 도약했다.

일본 비웃음에도 꺾이지 않던 ‘반도체 집념’

그 중심엔 ‘반도체’가 자리한다. 이 회장의 반도체 집념 역시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찌감치 반도체 산업이 한국과 세계경제 미래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국내 문화적 특성에도 부합한다고 봤다.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파산 직전에 놓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삼성 반도체’ 기틀을 잡았다. 당시 해외 기술을 수입해 TV를 조립하던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시장에선 순식간에 비웃음거리가 됐다. 당시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던 곳은 일본. D램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었다. 

이 회장은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묵묵히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를 이어갔다.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해내면서 천천히 시장 점유율을 늘려갔다. 삼성의 무모한 행보는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주인공은 일본이 아닌 ‘삼성’이다. 

이런 점유율의 배경에는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2007년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의 기술이 자리한다. 이어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신념이 일군 성과라는 게 업계 평가다.

체육계 발전에도 족적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발표를 듣고 감격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스포츠 마니아로 유명했던 이 회장은 생전 한국 체육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쳤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건희. 재계에서 이 세글자를 단순한 기업인으로 정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의 글로벌 삼성을 있게 한 주역이자 대한민국의 국격을 드높인 인물. 삼성을 세계적인 그룹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의 거목. 그의 삶을 정의하는 수식어는 대부분 이렇다. 

이 회장이 영면하던 날. 그는 운구차량을 타고 삼성 반도체 사업의 핵심기지인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그 길을 1000여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함께 배웅했다. 이날 화성 사업장 H1 정문에 걸린 현수막엔 이런 글귀가 담겨 있었다.

“반도체 100년을 향한 힘찬 도약을 회장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