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월급이 줄었는데 갑자기 일정했던 소비를 줄일 수 없으니 대출을 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돈에 쪼들리다 보니 안 싸울 것도 싸우고 부부관계도 안 좋아졌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사에 기내식을 제공하는 협력업체의 직원인 이민석씨(가명·47)는 최근 회사 경영 악화로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정부의 무급휴직 고용유지지원으로 평균임금의 50%가 지급되지만 수당 등이 포함되지 않아 실제 받는 급여는 더 줄어 들었다.
당장 고3, 고1 나이의 두 자녀의 학원비부터가 걱정이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파고 대출을 받았다. 월급이 줄어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종종 하던 외식도 할 수 없게 됐다. 민석씨는 "자식들에게 맛있는 것 사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라며 아이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회사가 되살아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민석씨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회사가 원청으로부터 입찰을 따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인데 회사는 입찰 일정에 대해서 정확히 공지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면 '보류 중이다. 회사도 힘들다'는 말만 돌아왔다.
민석씨는 2004년 회사에 입사해 16년 동안 같은 일을 했다. 만약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딱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민석씨는 "회사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잡생각도 나고 그런다"고 말했다.
민석씨의 사례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항공산업의 위축은 곧바로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항공업계 노동자들의 위기로 이어졌다. 위기는 다시 노동자들을 '위험'상태로 몰아 놓았다.
지난 19일 공공운수노조 영종특별지부는 인천국제공항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5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 22.6%는 '거의 매일' 우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거의 매일'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도 24.2%였다. 의료계는 온종일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병적인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영종특별지부는 이를 두고 "(인천공한 노동자들의 상황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심각한 수치"라고 말했다.
영종특별지부는 우울함과 불안감은 코로나19에 따른 휴직, 소득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응답자 중 81.5%가 소득의 감소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49.2%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정리해고가 예고된다고 밝혔다. 휴직으로 소득이 줄어든 데 더해 코로나로 인해 고용 축소가 예고돼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항공업의 특수성 때문에 현재 직장에서 해고되면 동등한 수준의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또한 항공업계 종사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 75.1%는 실직을 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인력 감축의 바람은 하청, 협력업체에 가장 먼저 불어 닥쳤다.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청소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의 경우 '코로나19 1호 정리해고 사업장'으로 불린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악화로 500명에 가까웠던 직원 중 120여명을 희망퇴직 시키고 360여명에게는 무급휴직 동의서를 받았다. 희망퇴직도 무급휴직도 거부한 직원에 8명은 정리 해고했다.
회사에 의해 정리 해고된 뒤 복직 투쟁 중인 김계월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부지부장은 "몸도 많이 망가졌고 많이 힘들다"라며 항공업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 분하고 억울해서 굴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지부장은 무급휴직을 하고 있는 직원 중에는 재정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회사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아 무급휴직자들은 50만원 정도의 신속지원금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김 부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종일 라면만 먹고 살고 있다.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하청업체 직원뿐만 아니라 항공사에 직고용된 원청직원들도 항공업계의 경영악화에 따른 소득 감소로 불안을 호소하고 있었다.
송민섭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지부장은 "대한항공의 경우 그나마 통상임금을 받고 있지만 통상임금에는 수당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라며 "승무원들의 경우에는 비행 수당이 빠지면 월급이 반으로 줄어든다. 월급쟁이들은 평소에 월급에 맞춰서 생활을 계획하는데 월급이 반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4, 5개월 지나다 보니 직원들이 의기소침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일 서울 강서구에서 거주하던 국내 항공사 승무원 A씨(27·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휴직에 들어간 뒤 전세대출 원리금 상환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 지부장은 A씨의 사건 이후 승무원들을 중심으로 우울 증세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원들이 있어 이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영종특별지부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전체 고용인원중 47%인 2만8167명이 유·무급 휴직 중이거나 희망 퇴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상당수의 직원들이 소득 감소와 고용불안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사용자가 신청을 거부하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고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해 지원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천공항 노동자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 인천 중구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4월 인천 중구청은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정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라며 지정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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