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의생명과학원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김윤경 기자 =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생의 책으로 만화 '슬램덩크'를 꼽는다. 많은 사람들이 완독은 안 해도 한 두권쯤은 보았을 '슬램덩크' 완전판.
많이 읽고 많이 쓰기로 유명한 하지현 교수는 최근 자신의 독서와 관련해 낸 책 '정신과 의사의 서재'에서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구천재 서태웅을 비롯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낙관하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진정한 팀웍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하 교수는 강백호를 통해 어딘가 쫓기는 듯, 결핍된 채로 살기보다 현실에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 교수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늘의 일뿐"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 한 해를 통째로 날린 것만 같아 불안하고 갑갑한 개인들에게 써 준 처방전이다.

"내가 지킬 것들,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고 사람들 가능한 한 안 만나며 오늘을 사는 것. 그런 각자의 역할들을 잘 하면서 지내는 것이 최선이예요. 낙관적인 자세를 잃지 말고. 그리고 갑자기 많아진 자신의 빈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겠죠. 그런 시간은 또 한 번의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인 겁니다. 자신을 모르는 채 주어진 일만 열심히 했던 시간들을 보내 왔다면 이제 잠시 멈춰 자신과 대화하며 내가 무얼 좋아하는 건지, 무엇이 나의 적성에 맞는 지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인 거죠"

불안할 수록 무작정 '멀게' 미래를 볼 것만이 아니라 시간을 분절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소소한 성취를 느끼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촘촘하고 날카로운 비교가 습관이 돼 무엇을 성취한다 해도 만족 못 하고 불안해 하는 중장년들, 열심히 노력해 본들 얻을 과실이 애초부터 너무 적거나 없다고 절망하는 청년들에게도 모두 적용될 말 같다.


하 교수도 외래 진료에선 모르는 약의 이름들로 엄격하게 처방전을 써주었을테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순서대로 책꽂이에 꽂혀있는 슬램덩크 24권이 하 교수를 내려다보며 해준다는 말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처방전이었다. "괜히 억지로 잘 하려고 힘 주지마. 무릎을 살짝 튕기고 왼손은 거들 뿐이야".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서재. 인생의 책으로 꼽는 슬램덩크 시리즈가 나란히 꽂혀 있다.(하지현 교수 제공) © 뉴스1

다음은 하지현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도 많이 쓰셨지만 추천사도 많이 쓰셨다.

▶ 인터넷 서점에 가서 제 이름으로 검색하시면 추천사를 쓴 책도 모아 놓아 쉽게 찾아보실 수 있다. 올해 특히 많이 써서 10권 정도에 대한 추천사를 썼다. 대부분 심리서다.' 가족에게 우울증이 생겼을 때'(가제)라는 책도 있었다.

-가족에게 우울증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터라.

▶ 환자도 그렇지만 보호해야 하는 일원인 내가 안 지쳐야 한다. 비행기가 추락해 탈출 할 때 아이보다 부모가 먼저 산소 마스크를 쓰라는 조언과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우울증에 걸렸을 대 '나 때문일까'란 죄책감을 지나치게 갖지 않는 것이 좋다. 환자의 가족들에게는 지치지 않도록 "당장 좋아지진 않지만 결국 좋아진다"고 말해주는 편이다.

-치유되면 좋지만 만성적인 경우도 있는데.

▶ 만성적인 우울증 환자라도 사회 생활은 멀쩡히 잘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환자가 '몸과 마음의 기능이 얼마큼 회복되고 있느냐'에 대해 느끼는 수준은 다르다. 가정주부라면 일상 생활만 가능해도 만족할 수 있겠지만 회사 임원인 경우는 회의도 많고 중요한 결정도 수시로 해야 하니까 치유의 수준에 만족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심리적 우울증과 생리학적 우울증을 구분을 해서 약물이 필요할 경우 투여해야 한다.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당뇨병처럼. 우리나라에선 '심리 환원주의'가 주도적이어서 생물학적인 것보다 결국은 심리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데, 심리와 의지의 문제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면 좋겠다.

-새 책 '정신과 의사의 서재'에도 나와 있지만 직업을 위한 일을 하는 틈틈이 자신을 위한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추천사까지 쓸 수 있는 시간이 과연 나는가.

▶ 빈 시간을 즐기기 위해 많은 것들을 안 한다. 어느 단체의 대표나 장, 이런 건 안 하고 행정이나 회의에 필요한 시간도 가급적 최소화하려고 한다. 논문을 쓸 때에도 '네이처'나 '셀'에 오르겠단 야심은 갖지 않는다. 몇십억씩 하는 프로젝트를 따내는 일이나 진행하는 것에도 욕심이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나 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간이 난다. 그저 진료하고 논문쓰고 나머지 시간은 다 독서나 글쓰기 등에 할애하는 것이다.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좋다.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의생명과학원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요즘 20대들은 많이 힘들다. 지금을 생각해도 그렇고 미래를 생각하면 더 갑갑하고.
▶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고자기가 해 온 노력만큼 더 큰 보답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작년만 해도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살 것이라고 상상도 못 하지 않았는가. '장기 계획'이라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미 틀렸어' '이번 생은 망했어'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위험하다. 1주일이든 한 달이든 6개월이든 시간을 과거보다 조금 작은 단위로 분절해서 계획을 잡고, 짧은 미래 안에서 노력하고 성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면에선 기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짜여져 있다면 늦게 시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먼저 노력한 사람에 비해 뒤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처럼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누구든 똑같이 '제로(0)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이렇게 예측이 어려울 때엔 대응을 잘 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그리고 20대들에겐 잘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인생이 90대까지 이어진다고 할 때 지금 1~2년이 모든 걸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은 아닐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내구성이다. 외부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고 자신만의 능력치를 쌓다 보면 그것이 언제 어떻게 쓰일 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라"고.

-하지만 좌절의 경험이 잦으면 희망적인 태도를 갖기보다 분노의 감정만 많이 쌓이게 된다.

▶ 비교에는 상방 비교와 하방 비교가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상방 비교만 한다. 그런데 하방 비교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 안전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상방 비교를 통해 '열폭'(열등감 폭발)하지 말아라. 적당한 열등감을 갖고 적당한 부러움을 갖는 것도 부드러운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 두 가지가 되어야 자존심을 갖게 되고 그 다음 단계인 자존감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조금씩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교수님은 어떠신가.

▶ 잘 모르겠다. 그냥 살아간다. 다만 그런 생각은 한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노력이 구성하는 비중이 80~90%라면 나머지 10~20%엔 우연과 운명이 작동한다고. 그런 것들을 인정해야만 사회의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운이 작용하니 포기하란 것이 아니라 노력한 것의 모든 것, 100%의 과실을 다 내가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많이 갖게 되면 그건 '운이 따라서 그랬다' 이렇게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갖고, 어떤 이가 잘 안 됐으면 그이는 '운이 안 따라서 그렇게 됐구나'라고 생각하고 내가 도울 수도 있고. 이런 연대와 연민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의생명과학원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20대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는가.
▶ 내가 쓴 '정신과 의사의 서재'?(웃음) 요즘 읽은 것 중에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란 책이 있다. 요즘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리터러시(문해력)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3분 순삭' '15분 안에 정복하기' 이런 유튜브 동영상들을 많이 검색해서 보는데, 보면 다 아는 것 같고 이해한 것 같다. 그러나 깊이까지 다 갖추긴 어렵다. 나 자신이 조금 더 경쟁력을 갖추고 싶다면 뭔가 그것보다는 더 포만감을 주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좀 더 복잡한 변수들이 담겨져 있는 올드 미디어, 그러니까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단편적이고 스낵 같은 정보를 쉽게 흡수하는 것보다 깊은 사유를 통해 정보를 내 것으로 흡수해 내재화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지금의 20대가 싫어하는 아버지 세대, 586세대들이 가장 잘 훈련돼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두 번째로는 셀렉션(선택)에 대한 경험을 갖자는 것이다. 최근 읽은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이란 책을 권한다. 세 살부터 골프를 쳤던 타이거 우즈도 있지만 로저 페더러 같은 경우 수많은 운동을 해보다가 마지막에 테니스를 택해 성공했다. 요요마도 많은 악기들을 다뤄보다가 자신에게 첼로가 가장 맞다고 택했다. 조바심을 갖고 진로를 택하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이 책은 말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재를 원할 것이다.

이 책에선 마이크로 모티베이션(Micro-motivation)이라는 것도 중요하게 다룬다. 작은 성과를 인정하고 보상할 때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 사토리 세대(장기 불황 '잃어버린 20년'에 태어난 세대. 자기만족과 소소한 삶에 만족하는 세대를 말한다)와 비교해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N포 세대'(취직 출산 결혼 등 많은 것을 포기하는 세대)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비관과 자조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는 욕구와 욕망의 피로도를 좀 줄이고 적절한 선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도 괜찮다는 걸 알면 좋겠다. 자꾸 상방 비교를 하면서 열폭하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

-4,50대 부모 세대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 이 나이대 분들에게 해드리는 얘기가 '70세 이후의 삶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제 오래 사는 사회가 됐다. 연금을 들듯 지금의 나를 관리하면서 70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무섭고 불안해진다. 세 가지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첫 번째가 신체적으로 건강할 것, 두 번째는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출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나 자신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선 안 된다. 특히 엄마들에게 많이 얘기하는 건 딸이나 아들하고 하루에 한 번 꼭 전화해야 한다, 이런 생각 안 된다고. 친구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면 안심이 된다. 제가 그리는 삶은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과 등산 등 운동을 하고 외식도 하며 즐기는 삶'이다. 앞의 세 가지가 다 충족되는 것이다. 거주비가 상대적으로 싸게 드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최소한의 일상을 영위하는 것도 그려 본다. 여수나 통영 같은 곳들에 가면 슬그머니 포털 부동산 정보를 찾아보곤 한다. 그러면 '이 돈이면 여기서 2년은 살 수 있겠네' '다 털고 내려온다면 이렇게 되겠군' 이런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그래서 안심을 하곤 한다.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라고 보는 것 중 하나가 최근 4~5년 사이에 자식의 대학 재수에 대한 부모의 생각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조기 유학도 많이 줄었다. 과거엔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 보내려고 희생하고 집을 팔아서라도 유학을 보내고 했는데 요즘은 덜 그렇다. 아이들에게 모든 걸 바치다가 부모들이 자신들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해 생기는 분노와 우울감, 이른바 '코로나 블루' 증상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 앞으로 이런 세상이 얼마나 갈까?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고, 사람들 안 만나며 오늘을 잘 살자는 조언을 하고 싶다. 전염병과 기후변화 등이 우리의 삶을 황폐화할 것이라며 두려워만 하지 말고 내가 오늘 지킬 것들을 해 나가면서 각자의 역할들을 하자.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20~30년간 지켜온 루틴(routine), 통상적인 일상이 바뀌었잖은가. 조찬도 챙겨야 하고 점심 약속도 꼭꼭 채워야 하고 집안 대소사는 물론이고 지인들의 경조사까지도 다 챙겨야 열심히 사는 것만 같았던 질서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이걸 안 챙기게 되어서 불안해'가 아니라 '어, 이걸 안 하고 이렇게 지내도 괜찮네'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더라도 이전 수준까지로 복귀되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비어있을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

-나만의 것은 어떻게 만드나.

▶ 바로 이럴 때 '내 20년 후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지금 그래서 꼭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이런 게 아니라 또 한 번의 셀렉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생각하지 못 한 채 일만 해 왔다. 그러나 빈 시간이 생기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해보게 되고, 그렇다면 자신이 무엇을 진정 좋아하는지, 적성에 진짜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또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교수님이 새로 발견하고 선택한 것이 있다면.

▶ 달리기다. 올해 들어서 피트니스장에도 가지 못 하고 아무 것도 못 하니까 무기력해졌는데 4~5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봤더니 의외로 적성에 맞더라. 한 번에 5km 정도씩 일주일에 서너번은 집 근처를 달린다. 그렇게 달린 것이 올해 500~600km는 된다. 신체적 건강은 정신적 건강과 아주 밀접하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는데 좋더라.

-독서와 집필도 쉬지 않으실텐데 다음 책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인생의 숙제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태스크, 미션들. 40대 여성이면 자녀문제, 50대 남성이면 이직과 창업 등이 숙제일 수 있다. 이런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얘기해 보고 싶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서재. 많은 책들 가운데서 추리고 추린 책들이 놓여 있는 코너다.(하지현 교수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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