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 = "기부는 어떤 마약 보다 더한 중독성이 있다고 합니다. 기부하면서 오는 만족감과 희열이 있는 거죠. 기부라는 마약에 모두 중독됐으면 좋겠습니다. 신종 마약으로 유행시켰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기부·나눔 캠페인의 상징인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예종석 회장은 '희망2021 나눔캠페인'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던 지난달 29일 <뉴스1>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모금회는 매 연말연초 두 달여간 진행되는 '희망 나눔캠페인'에 총력을 기울인다. 연중 기부금의 70%가량이 이때 집중된다. 기업 보다 개인, 일회성 보다 정기 기부가 정착된 미국 등 선진국의 나눔문화가 부러운 것은 사실. 하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마음, 온정을 나누려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도 뚜렷하다. 모금회 직원들이 연말연시 밤잠을 줄여가며 캠페인 전개에 매달리는 동력도 여기 있다.
예 회장은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위대하다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3월 초 코로나19 발생 얼마 안 되고 모금을 시작했는데 한 달여 만에 1085억 원 정도 모금됐다"며 "저희(모금회) 성금을 조금 더 보태 환자와 의료진,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소외이웃을 돕는데 바로 배분했다.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흐뭇하다"고 미소 지었다.
대구 코로나19 유행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나눔 의식은 빛났지만 '희망2021 캠페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먹구름이 뒤덮은 올해 경기가 워낙 바닥이어서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진행한 '희망2020 캠페인' 보다 750억 원 낮춘 3500억원을 목표액으로 정했지만 이조차 달성을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예 회장은 "3~4월 코로나19 성금이 많이 걷히다 보니 국민들의 기부 여력이 많이 줄은 게 사실이고, (코로나19 확산 및 경기 침체) 피로도 많이 쌓인 게 사실"이라며 "예년과 같은 목표를 갖고 가기엔 국민들께 부담을 너무 많이 끼쳐드린다고 생각해서 목표액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대면접촉이 줄어들면서 모금활동이 위축된 것도 적지 않은 타격이다. 언택트 홍보, 유튜브 활용 등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지만 목표액 달성까지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예 회장은 "직접 방문이 어렵다 보니 모금활동도 전화나 온라인으로 노력하는데 아직 온라인 문화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 많다"며 "기부자도 저희도 서투른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국민들의 저력이 대단해서 이런 상황에서도 그나마 모금이 되는 게 대단하다"며 "국민들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기부와 나눔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과 투명성이다. 과거 CSR 활동을 내세운 단체·재단이 탈세나 세습의 수단으로 악용했던 사례가 많았다. 최근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지원금을 둘러싼 갖가지 논란 등이 불거졌다. 사회 공헌 사업·단체들에 요구하는 국민들의 잣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울러 나눔 기부 문화 확산 과정에서 겪어야 할 필수적 성장통이기도 하다.
예 회장은 "저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자체 준법 감사실 감사, 외부감사와 함께 정부 감사도 받지만 국정감사까지 받는 기관"이라며 "우리 직원들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목숨처럼 여기고 수시로 감사를 실시해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경고할 것은 경고한다. 사안이 엄중하면 고소·고발 등 조치도 취한다"고 강조했다.
대중의 모금회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모금액 사용처와 사후관리다. 내가 낸 성금이 허투루 쓰이거나 목적과 달리 사용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상당하다. 자체 감사와 외부감사, 정부는 물론 입법부 감시까지 3중 4중 견제·감시 장치가 제도화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가장 투명하게 운영되는 CSR 단체라는 자부심이 높다.
예 회장은 "저도 취임 전까지만 해도 모금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측면이 있었다. 사랑의열매는 자체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체 사업이 없기 때문에 모금회는 종교적 편향성에서 자유롭다. 아주 공정하게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우리 자체사업을 하지 않고 사업을 잘하는 기관을 선정해서 지원한다. 적십자, 사회복지협의회 같은 큰 기관도 있지만, 사업 아이디어는 좋지만 모금 능력이 안 되는 곳들을 선정해 지원한다. 중간 창구 역할, 나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배분위원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한다. 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지원 기관 선정 과정에 절대적으로 관여 못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모금회가 지원 단체 선정을 까다롭게 진행하다 보니 이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상당하다. 지원금액 사용처를 꼬치꼬치 캐묻고 부적정한 사용이 발견될 경우 자금을 회수하고 차기 선정에서도 배제한다. 심지어 고소고발 등 법적 조치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공정·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는 거리낄 게 없지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모금회를 껄끄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예 회장은 "지원 심사를 통해 탈락한 기관들이나 저희들로부터 제재를 받은 기관들은 불평불만을 할 수밖에 없다. 청탁도 간간이 들어오는데, 못 들어주는 여건이다 보니 대개 청탁이 안 받아들여지면 욕을 하기도 한다"며 "이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모금회의 이 같은 조직문화는 1998년 출범 후 22년간 차근차근 쌓아올려온 나눔문화 노하우와 시스템 덕분이다. 회장조차 비상근 명예직으로 월급 한 푼 받지 않는다. 소중한 국민성금이 헛되이 사용되지 않도록 서로 경계하고 감시한다.
예 회장은 "취임하고 직원들과 안면도 트고 상견례 차 설렁탕이나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한 팀장급 직원이 '준법 감시실 검토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더라"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모금회의 이 같은 조직문화에 예 회장의 전문성과 뚝심이 결합되면서 시너지 효과는 상당하다. 예 회장은 대한적십자사에서 활동하고 아름다운재단 2대 이사장을 지낸 경험을 가진 CSR 분야 전문가다. 한국의 기부문화를 분석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수익금을 모두 기부한 실천운동가이기도 하다.
예 회장의 이 같은 나눔 철학은 올해 별세한 부친 고(故) 예춘호 옹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고 예춘호 옹은 부산 영도에서 빈민·교육 자선사업가로 이름이 자자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가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설립한 도서관에서 학창시절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춘호 옹은 국회의원 시절 친JP계로 분류됐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표를 던진 강단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전두환 신군부시절에는 '김대중 내 란음모' 사건에 휘말려 옥고도 치렀다.
예 회장은 끝으로 "코로나는 정말 한 세대에 한번 체험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생각지도 않은 일을 겪으면서 어려움이 많지만 그만큼 이 기관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됐다"며 "지금은 희망캠페인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좀 더 열심히 뛸 테니 국민들께서도 많은 관심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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