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박기범 기자 = "휴대전화가 없으니 코로나19 검사를 못 받습니다. 검사증이 없으니 노숙인 센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코로나19에, 기록적인 한파에 지친 몸을 맡길 곳 하나 없으니 서럽습니다."
지난 14일 밤, 서울역에서 만난 김모씨(50대)가 약간은 취한 목소리로 전한 말이다.
3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김씨는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려 했지만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해 시설에 들어가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검사증이 있어야만 시설 이용이 가능한데 김씨의 경우 휴대폰이 없어 검사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도를 기록하는 등 올 겨울 북극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휴대폰'이 없어 거리를 헤매고 있다.
16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노숙인은 3895명이다. 서울시는 1년에 4차례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다시 평균치로 나누어 노숙인 수를 집계한다.
이 중 생활시설 입소자를 제외한 거리 노숙인은 595명이다.
이들은 서울역, 남대문, 숙대입구 등지에서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다.
서울역, 남대문, 숙대 입구 등에서는 이들을 위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시설은 한파가 불어닥칠 때면 노숙인들이 잠시 몸을 녹이는 장소로 이용됐지만, 최근에는 이용에 제한이 생겼다.
이유는 코로나19 검사 확인증 때문. 최근 센터를 이용한 일부 노숙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이들 시설은 일시적으로 검사증이 있는 사람만 출입을 허용키로 했다.
노숙인들에게 검사증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신원확인이 필요하다. 임시 선별진료소는 신원확인 대신 전화번호만 기입하면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최소한 검사 결과를 통보받을 휴대전화가 있어야 검사가 가능하다.
문제는 노숙인의 경우 휴대전화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란 점이다. 노숙인들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거리에서 생활한다. 몇 만원이나 하는 휴대전화 기기값에 매달 청구되는 통신사 이용비까지 내면서 휴대전화를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코로나19 검사증을 받지 못하고 결국 거리에 내몰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역 광장에 있는 센터 앞에서 만난 노숙인도 코로나19 검사로 인해 센터 이용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뉴스1>이 만난 최기석씨(가명·50대)는 "오늘 밤은 센터 대신 밤길을 걸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의 소지품이 담긴 캐리어를 끌며 서울역 인근을 배회했다.
그는 "익명으로 검사하는 선별진료소에 가도 전화번호를 쓰라고 한다. 휴대폰이 없는 노숙인들은 난처하다"며 "오늘도 휴대폰이 없어 선별진료소에서 실랑이를 하는 노숙인들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혹한기 홈리스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자로 나선 노숙인 김모씨도 이와 같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추위를 피해 희망지원센터 들어가려 해도 못 들어갑니다"며 "들어가려면 코로나19 검사 확인증 있어야 하는데 휴대전화가 없어 검사를 못 받습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사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 거리홈리스가 저만은 아닐 겁니다"라며 "서울역 지하도 중앙통로에서 잠을 자는데 날이 너무 추워 ‘내일 아침에 깰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할 정도입니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역 임시 선별진료소에선 한 노숙인이 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기입하고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소동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홈리스 활동가인 안형진씨는 "서울역은 노숙인 센터가 근접해 있지만 고속터미널 등의 지역은 센터 지원조차 받기 힘들텐데 어떻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으시는지 걱정이다"고 했다.
노숙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서울을 덮친 한파로 저체온증이나 동상을 겪는 노숙인은 급증했다.
지난 13일 질병관리청이 조사한 '한랭질환자 발생현황'에 따르면 한파가 불어닥친 지난주 (1월3~9일) 저체온증이나 동상을 겪은 노숙인들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초부터 매주 20~40명대를 기록하던 한랭질환자는 올해 1월 3~9일 130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이중 68.8%는 무직자와 노숙인, 신원 미상자다. 거리 노숙인들이 한파에 무방비에 놓여있다는 이야기다.
서울시 노숙인들을 지원하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노숙인의 센터입소를 지원하고 있다.
휴대전화가 없는 노숙인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센터를 찾은 노숙인들을 오후 4시에 한 차례, 일괄적으로 보건소로 안내한다.
휴대전화가 없는 노숙인을 위해서 직원들의 연락처나 이메일로 검사결과를 받아 이를 노숙인에게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수백명의 거리노숙인에게 이같은 검사 방식을 안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센터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노숙인들을 검사소로 안내하고 있지만, 거리에 계신 모든 분들을 찾아다니며 코로나19 검사 방법을 안내할 순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에는 검사증 없이도 입소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노숙인들이 이를 잘 모르거나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 노숙인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이 때문에 행정력을 보다 집중해 노숙인들의 코로나19 검사가 용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행정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 활동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노숙인들이 코로나19와 한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다소 누그러졌던 추위는 주말부터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보됐다. 일요일 밤부터는 폭설도 예고됐다. 노숙인들에게 추위를 피할 곳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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