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대한주택도시공사(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드러나게 된 데에는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제보를 받고 이를 확인해 고발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오랜만에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감시와 견제라는 제역할을 하지 못해 추락하던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도 회복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14일 시민사회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민변과 참여연대는 지난 2일 LH 임직원 10여명이 광명·시흥지구가 3기 신도시로 지정되기 전 약 100억원에 달하는 사전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LH 사건'은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정부는 물론 수사기관과 정치권, 언론까지 달려들어 진상 규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고발은 시민사회단체의 본질인 '견제' 정신이 살아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특히 이 단체들이 '친정부' 성향을 띄었다는 점에서 이번 고발은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도 회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앞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면서 실제 우리 사회를 뒤바꿨다. 일례로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이 단체의 역할로 비리유치원 현황이 폭로되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유치원3법(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도 눈길을 끈 시민사회단체다. 이 단체는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에서 복제견으로 태어나 인천국제공항에서 농축산물 검역탐지견으로 활동하고 은퇴한 이후 대학으로 보내져 동물실험용으로 투입된 개 '메이, 천왕이, 페브'에 대한 실상을 2019년 고발하면서 천왕이와 페브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도왔다. 이 고발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이뤄졌으며,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사이버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하는 반크가 동해와 독도의 국제 표기를 수정하는 등 외국 정부나 기업 등에 한국을 홍보하고 있고,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는 'n번방' 등 수많은 사이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기부금 횡령 등 도덕적 해이, 정권이나 기업 등과 유착되는 편향성, 내부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것이 현실이다. 시민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이른바 '정의연 사태'나 '케어 사태'가 대표적이다.
결국 시민들은 시민사회단체의 편에 서지 않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9년 5~6월 19~80세 성인 5020명을 대상으로 공공조직과 단체에 대한 신뢰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시민운동단체의 신뢰도는 52.66%였다.
검찰·경찰 39.09%, 언론 40.5%보단 높은 편이었지만, 50%를 갓 넘긴 점으로 미뤄볼 땐 아쉬운 점수다. 한국행정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19년 9~10월 국민 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9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시민단체 신뢰도는 4점 만점에 2.4점이었다. 시민단체를 향한 신뢰는 의료기관 2.6점, 교육기관·금융기관 2.5점보다 낮았고, 지방자치단체, 군대, 공기업과 동일했다.
시민사회운동 한 전문가는 "최근 조사된 자료를 보면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도가 다른 기관과 비교할 때 중위권 정도는 된다"면서도 "2000년 이후 가장 신뢰도가 많이 하락한 기관으로 시민사회단체가 손꼽힌다"고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도 "분명 바꾸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모습을 그리면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재정 문제 같이 현실적인 한계부터 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권력에 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단체 크기가 커진 이후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국 시민사회단체 신뢰도 회복을 위해서는 단체들이 권력과 거리를 두고, 설립 초기에 세운 목표,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본질인 누구도 눈치보지 않고 '견제'하는 정신을 갖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렇게 단체의 정체성과 색깔,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매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연대와 민변이 이번에 한 일은 잘한 일이지만, 앞서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태도나 정보 3법, 의료 3법 등에 대해서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는 등 시민사회의 본령을 잃은 모습을, 권력 안으로 흡수된 모습을 보여줬다"며 "그런 과정에서 시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단체가 신뢰를 잃는 이유는 딱 하나, 권력·시장·기업이라는 힘을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기업이나 정부 후원금을 받아서 일할 생각말고, 시민만 바라보고 그들로부터 응원을 받아서 활동할 수 있는 정당성과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386 중심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가치를 가진 세력이 나가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는 세력들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며 "이번 'LH 사태'를 전환점으로 두고 시민사회단체가 위기를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