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때 전국에 있는 소방관들이 달려가 불을 껐잖아요. 그때 소방관들이 철수하는 고속도로 전광판에 '소방관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던 것을 봤어요. 그런데 저희도 아프리카돼지열병 처음 났을 때 지역의 방역사들이 다 달려가서 돼지 똥밭을 구르면서 일했거든요. 그런데 누구 하나 '고맙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18년째 가축 방역사로 일을 하는 A씨는 자신의 직업이 '창피하다'고 말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가축 감염병을 차단해 국민의 먹거리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져보려 애썼으나 그런 노력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라져갔다. "저는 멍청해서 이 회사에 남아있는데 후배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똑똑해도 남아서 일을 할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합니다. 후배들한테 창피한 게 많습니다."
지난 25일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A씨의 왼팔에는 스포츠 테이프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일명 '테니스 엘보우'라고 불리는 팔꿈치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그는 자신이 직접 팔에 테이핑을 하고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마리씩 무거운 가축들과 씨름하다 보니 방역사 중에 허리, 관절 통증을 앓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영하 20도 추위에 떨며 일하는데…'최저임금' 수당
A씨를 포함해 전국 495명의 가축 방역사들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인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방역본부)에 소속돼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가축 질병 예방을 위해 농가 시료 채취, 상시 예찰 업무 등을 하고 감염 의심 사례가 발생할 시 현장에 출동해 초동방역 업무를 맡는다. 소, 돼지, 닭, 염소 등 18개 종의 가축을 상시 점검하는 일도 버거운데 가축 전염병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업무도 함께 늘고 있다.
방역본부의 현장직은 모두 무기계약직 형식의 비정규직이다.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에 몇년을 일해도 월급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일한 A씨가 수당을 포함해 한달에 받는 월급은 310만원 정도다. 특히 초동방역 조치를 위해 긴급 출동할 때면 A씨의 답답함은 더 커진다. 감염의심 사례가 발생하면 방역사들은 24시간 내내 근무를 하면서 해당 지역을 통제하는 업무를 한다. 그런데 이때 지급되는 수당의 기준이 최저시급이다.
저온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바이러스들의 특성상 가축 감염병은 주로 겨울철에 발생한다.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날에도 방역사들은 오들오들 몸을 떨어가며 일을 한다. 잠은 차 안에서 쪽잠으로 해결해야 한다. 휴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곤 최저임금 수준의 수당을 받는다. 김필성 방역본부 노동조합 위원장은 "그나마 지금은 나아진 것"이라며 "과거에는 개인별로도 수당이 나오지 않아서 얼마 되지 않는 수당을 출근한 인원끼리 나누어 가지곤 했다"고 설명했다.
방역사들의 과중한 업무량과 열악한 처우 문제는 몇해 전부터 언급되기 시작해 인력 충원 등의 개선이 일부 이뤄졌다. 하지만 뉴스1과 만난 방역사들은 하나 같이 현장에서 처리하는 업무량 대비 여전히 노동 환경 개선은 더디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이들은 일한 만큼의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직원들의 이탈이 계속된다며 방역 현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사고 우려에도 업무량 때문에 안전은 뒤로
방역사들이 가장 먼저 꼽은 고충은 언제 어디서 안전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가축들을 대면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늘 따라다녔다. 충남 지역에서 일하는 50대 방역사 B씨는 "작년에 송아지에게 밟혀 일주일 정도 병가를 냈다. 얼굴을 밟혔더라면 큰 부상이었을 거다"라며 "가축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후로 트라우마도 생기고 계속해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 속에서 방역사들은 안전하게 업무를 하고 싶어도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으로 안전 수칙 등을 지킬 수 없다고 증언했다. 과거 안전사고가 다수 발생하면서 2인 1조 근무가 의무화되고 인력도 충원됐지만 쏟아지는 업무로 여전히 1인이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생긴다는 것이다.
8년 차 방역사인 C씨는 "2인 1조 근무가 의무화됐지만 감염 의심 상황이 생기면 24시간씩 현장에서 대기하는 인원이 필요하다. 이들이 평소 업무를 할 수 없게 되면서 팀이 깨져 버린다"라고 말했다.
C씨는 "위에서는 규정을 지키려고 하는데 현장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 직원들이 요령껏 위험을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분노했다. 이어 그는 "운이 좋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장애를 입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방역사들은 안전을 위한 보호장구가 지급되지만 장구 착용이 불편하고 일이 느려지기 때문에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를 착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부의 행정인력 부족으로 현장 인력들이 계속해 차출되는 것도 인력 부족 사태를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현재 방역본부는 전체 1269명 중 49명만이 정규직으로 이들이 일반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중앙본부와 지역본부의 사무를 처리할 수 없기에 현장에 배치돼야 할 다수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행정직으로 발탁돼 일을 하고 있다.
장비가 노후되고 있음에도 지원 부족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충북 지역에서 활동하는 방역사 D씨는 현재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연식이 10년을 넘어 문서 작업을 하는 데도 벅차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여러 농가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차량 이용이 필수지만 관련한 지원도 부족했다. D씨는 "가다가 바퀴가 빠지는 차가 있어서 원래는 폐차를 시켜야 하는데 교체가 안 돼서 계속해서 타고 다녀야 한다"라며 "수리비가 50만원 이상 나오면 바로 고치지 못하고 위에서는 '예산을 봐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고 전했다.
방역사들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방역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이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는 모습들을 보면서 부럽고 서글픈 감정이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 방역사는 업무를 위해 여러 농가를 돌아다녀야 하는데 지역 주민들이나 농장주들이 오히려 자신들을 '감염의 매개체'로 몰아세우기도 한다며 일을 하면서 이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듣는 것은 다반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산 부족'에 늦어지는 처우개선…"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한편, 김 위원장은 방역사뿐만 아니라 도축장에서 축산물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는 위생직, 방역 관련 전화 상담과 예찰을 담당하는 예찰직 등의 무기계약직 직원들도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역본부와 농식품부에 계속해서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방역본부 측 관계자는 "회사에서도 처우개선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예산이 필요한 문제라 어려움이 있다"라며 "상급기관인 농식품부와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 쪽에 적극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초동조치 시 최저임금 지급에 대해서도 지난해 초 노조와 합의가 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그분들(방역본부 무기계약직)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음주 중에 본부 측과 회의를 통해 이분들의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노조 측은 예산철만 되면 '논의를 해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며 적정한 수당 지급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행정소송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초동조치 최저임금 문제는 회사와 합의 후 향후 개선을 위해 상호간 노력하자고 했지만 사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노조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당장의 예산 확보가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가축 방역 업무의 일원화와 현장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국가직 전환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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