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문자격사인 감정평가사가 부동산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투기하고 부당이득을 얻은 사실이 적발될 경우 법적 자격을 취소하는 법안이 여당에서 추진된다. 올 초 시민단체의 고발로 드러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불법 투기사태가 발단이 돼 사실상 불똥이 튄 셈이다.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이하 감정평가법)에 따라 동산이나 부동산 등 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 가액으로 표시하고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는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자격시험에 의해 법적 자격을 인정받고 변호사·법무사·회계사 등과 같이 전문성을 갖췄음을 고려할 때 이번 법안의 취지를 공감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까지 감정평가사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불법 투기를 했거나 부당이득을 얻는 사례가 적발되지 않았고 기타 국가 자격사나 공인중개사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아파트 매매거래 등기부를 71만여건 전수조사한 결과 공인중개사 등이 허위신고를 하고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을 안한 2420건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실거래가를 의도적으로 높이려는 허위신고가 의심된 거래는 12건이었다.
지난해엔 감정평가사 자격증이 없으면서 감정평가법인을 경영하는 비자격사 대표가 감정평가서를 조작해 대출금액을 부풀리고 실형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때는 오히려 재기 후에 사업을 다시 운영할 수 있는 규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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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사 처벌법 8월 국회 논의━
국회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감정평가사의 미공개정보 이용을 규제하고 불법 투기를 처벌하는 내용의 감정평가법 개정안이 지난 6월29일 발의돼 8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시흥갑)이 대표발의했고 천준호·진성준·오영환·신동근·박영순·김교흥·양기대·이수진·이규민·송재호·문진석 의원 등이 참여했다.문 의원은 “건전한 부동산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시장 교란 행위자는 부동산 관련 자격의 취득이나 업의 영위를 제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평가는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판정하는 업무로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가치평가가 필수적임에도 현행법률은 감정평가사의 자격 취득이나 업의 등록 등에 대해 범죄행위와 관련한 사항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서 미공개 개발정보를 누설하거나 이를 부동산 거래에 이용, 시세를 조작할 목적으로 허위 매매계약을 체결·신고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는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이나 ‘주택법’에 따른 금지행위 위반으로 감정평가사의 경우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즉시 자격이 취소된다. 비자격사라도 이런 행위로 실형을 받는 경우 3년 이내에 감정평가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일 즉시 시행된다.
이번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조응천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남양주갑)이 대표발의한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의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이 법안이 의결되지 않거나 수정 의결될 경우 이에 맞춰 조정될 수 있다.
감정평가사들은 사적 거래의 규제가 발생하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국가 자격사도 공무원에 준하는 높은 도덕성과 직업의식이 요구되는 만큼 공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의 현실을 감안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나지 않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 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평가사는 “의뢰인뿐 아니라 소유자나 거래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사적 이득을 위해 공개하면 안되는 감정평가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비밀 누설 금지 위반으로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법 투기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히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법적 자격을 취소하는 문제에 대해선 다른 국가 자격사와의 비교가 필요하고 형평성 논란도 있을 수 있다”며 “비자격사가 뒷돈을 받고 감정평가서를 조작하다가 적발돼 징역형을 받았지만 출소 후 아무런 제재 없이 다시 부동산업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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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직 비리 우려 없나━
이번 감정평가법 개정안의 배경이 된 LH 사태를 보면 공직자의 미공개정보 이용 권한이 사적 이익을 위한 투기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데서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앙정부와 산하 공공기관 공직자는 물론 정보 접근 권한이 있는 민간 감정평가사에 대해서도 규제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지만 지자체, 지방공사, 국회 등은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라는 비판 역시 피할 수 없다.올 5월 11일부터 7월 2일까지 행정안전부가 특별감찰을 진행한 결과 내부 개발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대출을 받고 사업지 인근 농지를 취득한 지방 공무원 5명이 적발됐다. 이들이 취득한 부동산은 수십억원에 달했다. 이들 중엔 고위직도 있었지만 6~9급에 해당하는 주무관 직급도 있었다. 행안부는 이들 중 3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지자체와 지방공사 공직자의 부동산 거래 규제를 위해선 단순히 조사와 처벌에서 끝날 게 아니라 부동산 거래 제한이나 공무원 자격 취소, 재취업 제한 등 보다 강력한 규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지자체와 지방정부까지 공직자의 부동산 거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행안부가 관련 법안을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 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산 거래시장의 교란 행위는 LH 임직원이나 감정평가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LH 사태가 발단이 됐을 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사회 전체의 기강 문제임을 고려해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엔 의문이 있다”고 우려했다. 임 교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등을 이용할 수 있고 부동산 백지신탁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제시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당정이 추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방안이 ‘반쪽짜리’라는 지적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선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이라며 혁신방안에 공감하지 못하는분위기다. LH 임직원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취득한 것으로 확인된 부당이득의 강력한 환수 조치에는 공감하지만 전체 직원의 성과급 환수, 인원 구조조정 등이 정작 상위기관인 국토부에는 해당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가 정책 설계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공기업을 사업 시행자로 내세우는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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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의 LH 조직개편안 ‘국회 문턱’ 넘을까━
국토부는 6월 7일 LH 직원 약 2000명(20%) 감축과 성과급 환수를 기본으로 한 ‘LH 혁신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7월 28일 조직개편안을 내놓았다. 3개의 LH 분사 대안이 제시된 가운데 국토부는 LH 지주회사 산하에 사업회사로 쪼개는 방안에 힘을 싣고 있다. 주거복지 부문을 지주회사로 하고 개발사업 부문인 토지·주택을 자회사로 두는 방안이다.국회입법조사처는 LH 조직의 분사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가 분명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동산경기 하락 시기나 3기 신도시 사업 등이 종료되는 시점에 자회사 수익이 줄어 지주사의 주거복지사업 수행이 불가능해질 경우 정부가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도 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경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LH 사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국민을 위한 공공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비리행위를 근절해야 하지만 내부 개발정보를 활용한 불법적인 토지 구매행위 규제와 조직개편안 등은 목표가 다를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보다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기관의 구조와 기능 조정은 업무중복 해소, 경영효율성 확보, 재무적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선 강도 높은 쇄신 방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작 국토부는 책임이 가볍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학계 관계자는 “현실화가 쉽진 않겠지만 국토부의 조직개편이나 성과급 환수는 거론되지 않고 LH 선에서 끝나선 안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토부는 LH와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진다는 입장이다.
이번 LH 혁신방안과 조직개편안을 담당하는 정우진 국토부 토지정책과장은 “공직자 재산신고 대상을 현행 고위직에서 전 직원으로 확대한 것과 토지 취득 금지 등의 조치가 LH뿐 아니라 국토부 공무원에게 똑같이 적용한다”며 “다만 인원 구조조정이나 성과급 환수는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차이에 따라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국토부 공무원은 비위가 드러난 사실도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국회의원 300명의 의견이 각기 다를 수 있다”며 “당초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고 산하 공공기관에 사업 수행을 위탁한 것이지 불법을 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국회 관계자는 “LH 비리가 드러난 이후에 사업 시행자로서 처벌을 강화하는 데 공감하지만 국토부가 산하 공기업을 내세워 정책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 자체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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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청년 채용 줄어들듯━
이번 혁신방안을 보면 임원급의 연봉 동결과 전 직원 연봉체계 개편도 담겼다. LH 고위직 직원은 앞으로 3년 간 연봉이 동결된다. 연공서열이 아닌 직무 중심의 보수체계도 도입한다.구조조정안은 실효성이 낮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LH에 따르면 현재 전체 직원 수는 9643명으로 36개 공기업 가운데 4위다. 국토부는 이번 LH 혁신방안을 통해 직원 2000명을 감축키로 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자연 감소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정규직 직원을 인위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방법이 없어 신규 채용을 줄여야겠지만 청년 일자리 문제나 지역 일자리 문제 역시 중요한 정책 과제임을 생각할 때 정부로서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정규직 전환 실적에 높은 점수를 배정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직원 성과급 산정의 기준이 된다. LH는 지난 3년 동안 직원의 30% 수준인 비정규직 직원 300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3년 연속 경영평가 ‘A’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땅 투기 문제가 드러난 올해는 2020년 평가에 대해 D등급을 받았다. 투기가 발생한 시점엔 모두 A였다.
LH는 사장 연봉의 절반이 성과급이고 일반 직원 월급의 최대 2.5배까지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지급된다. 준정부기관 등 다른 공공기관 대비 성과급 비중이 높다 보니 경영평가에 더욱 목을 매는 조직이란 게 외부의 평가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 박근혜 정부는 성과연봉제,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 전환과 일자리 확대 등 정권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배점이 달라졌다”며 “경영평가제도가 공공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책임성을 높이려는 취지지만 실제로는 이를 훼손하고 있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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