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뉴스1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교통사고 피해자가 감정기관에서 예측한 여명(餘命·생존연수)기간을 토대로 보험사로부터 손해배상금을 일시금으로 지급받았는데 그 기간을 넘겨 생존했다면 보험사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이 경우 손해배상 소송은 예측된 여명기간이 지난 때로부터 3년 안에 제기해야 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씨 부부가 엠지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02년 4월 서울의 한 도로를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마을버스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경추 골절 등 상해를 입고 사지마비 상태가 됐다.

A씨는 버스의 보험사인 그린손해보험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씨는 이 소송 중 신체감정을 받았는데 감정서에는 '경추 골절 등으로 인해 사지마비의 영구장해가 예상되고 여명은 20%로 추정돼 4.982년의 여명이 기대된다'고 돼있었다.


법원은 2003년 12월 신체감정촉탁결과 등을 토대로 "피고는 원고에게 3억 3000만원을 지급하고 원고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며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해 위 금액을 받는 것 외에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04년 1월15일 확정됐다.

그러나 A씨가 감정에서 예상된 기간을 훌쩍 넘겨 계속 생존하자 A씨 부부는 2012년 7월 보험사를 상대로 다시 5억60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후 그린손해보험의 자산과 부채를 이전받은 엠지손해보험이 소송에 참가했다.

보험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전 소송에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됐으므로 A씨는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A씨의 연장된 여명에 따른 손해는 전 소송 당시에는 예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중한 손해"라며 "이 사건 소송은 전 소송과 별개로 전 소송의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1심 재판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에 의해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인해 소멸한다"며 "종전 예측 여명 5년이 지난 시점, 신체감정서 작성일, 화해권고결정 확정일 등 어느 기준으로 계산하더라도 이 사건 소송 제기 당시 소멸시효 3년이 경과됐음이 명백하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A씨가 여명기간을 지나 생존하게 돼 그 이후 추가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그 발생한 날부터 날마다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3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소송 제기일부터 역산해 3년 전에 발생한 부분은 소송 제기 당시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지만 그 이후에 발생했거나 발생할 부분은 아직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면서 1심을 취소하고 보험사가 A씨에게 2억2700여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예측된 여명기간이 지난 때 앞으로 새로 발생할 손해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그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늦어도 종전에 예측된 여명기간이 지난 때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소멸시효기간이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하고 2심 법원이 이 부분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법원이 불법행위의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판결을 내릴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식물인간 경우와 같이 후유장애의 계속기간이나 잔존여명 정도 등을 확정하기 곤란해 일시금 지급방식에 의한 손해배상이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비춰 현저하게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피해자가 일시금 지급을 청구했더라도 법원이 재량에 따라 정기금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전문 감정 등을 거쳐 예측된 여명기간을 기준으로 소송 등을 통해 손해배상이 이뤄진 다음 피해자가 예측된 여명기간을 지나 생존해 추가 손해가 발생하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며 "이 경우 법원은 손해배상을 일시금 지급방식으로 정하는 데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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