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던 전태일 열사는 분신으로 그 뜻을 알렸다. 그는 숨을 거두기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이를 이뤄달라고 부탁했고, 이 여사는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라고 말한 뒤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여사는 2주 뒤인 11월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군사독재에 맞섰다. 그는 1980년 5월4일 고려대 시국성토 농성에 참가해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상을 알리는 연설을 하고 같은 달 9일 한국노총 노동3권 보장 요구 농성에 참여해 "노동3권 보장" "민정 이양" 구호를 외치며 신군부 쿠데타 음모를 규탄했다.
이 여사는 그렇게 계엄당국의 허가 없이 불법집회를 주도해 계엄 포고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그해 12월6일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유죄를 선고받은지 41년 만에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오는 9월9일 이 사건의 재심 첫 재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여사의 아들이자 전 열사의 동생인 태삼씨는 뉴스1에 "먹먹한 생각뿐"이라며 2011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했다.
태삼씨는 "경찰서와 구치소, 교도소를 전전하던 어머니의 생애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수난은 계속됐고,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형하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재심을 통해 "노동자들이 지킨 정의, 오염되고 흐렸던 정의를 닦아 역사의 거울로 삼았으면 한다"라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어떤 권력에서도 차별받지 않는 국민의 참모습을 복원하는 게 이 시대의 몫"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어머니 재심도 재심이지만, 결국에는 대한민국에 정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는 "전두환씨가 참회하고 뉘우치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삼씨는 "모든 것을 유린하고, 무차별하게 시민들이 지키려고 한 민주주의를 사격으로 진압한 일을 전두환씨가 참회하고 뉘우치고 대국민 사죄한다면 내가 용서할 명분을 줄 텐데…"라며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사과하고 떠나야 후세들도 민주주의라는 정의를 하나의 이정표로 삼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9월9일 어머니 재심 첫 재판에 갈 계획이다. 이 날짜에 의미가 있는 만큼 이번 재판의 의미도 더 크다고 했다. 1977년 9월9일은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 사수투쟁이 열린 날이다. 당국이 노동자들의 배움터로 활용하던 노동교실을 폐쇄하자 조합원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노동교실 반환 및 앞서 구속된 이 여사의 석방을 요구했다.
태삼씨는 "의미 있는 날인 1977년 9월9일과 동일한 날짜에 첫 재판이 열리는 것을 보면 형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1월13일 판결이 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판은) 운명인 거 같다"며 "누구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있듯이, 1970년대 사람들과 50년이 지난 지금 사는 사람들의 운명은 이어지며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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