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푸틴의 의도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회담을 가진 후 뉴욕타임스(NYT)가 붙인 제목이다.
두 정상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회담 끝에 외교적 해법을 우선시한다는 것에 합의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프랑스 대통령실은 러시아로부터 벨라루스에서 합동 군사 훈련 종료시 병력을 철수 시키겠다는 가시적인 약속을 받아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NYT가 이러한 제목을 내걸은 이유는 푸틴 대통령이 회담에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안보에 대한 '레드라인'에 대해서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등 우크라 침공에 대한 불안을 잠식시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최근 몇주간 외교적 해법에 집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도 러시아 군이 우크라 침공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영국 가디언의 경우 두 정상이 갈등 해결을 위해 어떠한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며 이번 회담을 실패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푸틴, 마크롱 제안 긍정하면서도 우크라 침공 우려 해소 못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 갈등을 중재해 유럽 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를 잡으려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크라 침공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지 않았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현재 우크라를 중심으로 한 갈등 상황에서 서방국가들의 관심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까지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서 러시아의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해 새로운 유럽 안보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미국의 입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이로 인한 비판을 기꺼이 감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에 대해 언급하기까지 했다.
'핀란드화'는 1948년 냉전 당시 소련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 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던 핀란드의 무기력함을 의미하는 단어다. 당시 핀란드는 소련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 영토를 제공하지 않고,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NATO)에도 가입하지 않는 대신 국내자치와 주권을 보장받았다.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러시아가 이곳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NYT는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이 모델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러시아는 유럽국가이고 우리를 믿는 사람이라며 언제든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열린 자세로 일관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도 "우크라 갈등 타협안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 중 일부는 향후 취할 공동 조치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 갈등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자신들이 안보를 위해 설정한 '레드라인'에 있어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앞서 그는 나토의 동진 및 무기 배치 등은 러시아 안보에 레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보낸 서면 답변에서는 우리가 제기해온 문제들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시 유럽 국가들은 우리와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고 말했다.
특히 서방 국가들이 주장하는 우크라 침공설에 대해 부인하며 오히려 "현재 갈등의 원인은 우크라이나가 평화적인 영토 보전을 위한 모든 기회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대화를 지속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비전에 대한 내용을 담은 답변을 미국과 나토에 보낼 것"이라며 "내용에는 미국과 나토가 동쪽으로의 확장을 멈춰달라는 우리의 안전보장 요구를 보장 해달라는 것이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날 美·獨 정상 회담… 러 입지 축소엔 실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이날 워싱턴에서 회담을 갖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합의했다. 그러나 그동안 우크라 갈등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숄츠 총리는 이번에도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 러시아의 입지를 좁히는데 실패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두 정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과 독일, 나토는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합의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를 향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노드스트림2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숄츠 총리는 "우리는 절대적으로 단결되어 있다"면서도 노드스트림 2 중단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아울러 두 정상 모두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예고하면서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숄츠 총리는 갈등 해소를 위해 오는 14일부터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연달아 만날 예정이지만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온 그가 현 상황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크라 인근 병력 집결…EU "유럽, 냉전 이후 가장 위험한 순간에 놓여"
정상들의 회담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병력이 집중되면서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NYT의 분석을 증명이라도하듯 이날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북해함대를 지중해에 입항시켰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달 1월부터 2월까지 동해를 비롯한 태평양과 대서양, 지중해, 북극해 등 러시아를 둘러싼 전 해역에서 대규모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미국 국방부는 주말동안 러시아가 우크라 국경 지역에 병력을 추가 파견했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주말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경과 벨라루스에 병력을 증강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기존 언급했던 10만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의 병력이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군사적 압박을 높이면서 서방국가들도 동부전선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며 반격에 나섰다.
크리스티네 람브레츠트 독일 국방장관은 "리투아니아에 병력 350명을 추가 파병한다"며 "나토 동부전선 강화에 기여하고 동맹국에 우리의 결의 관련 분명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력은 수일 내로 배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은 리투아니아 상주 나토 병력 중 자국군 500명을 이미 배치했는데, 이에 추가 병력을 전개하는 것이다.
영국도 이날 비슷한 조치를 발표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벤 윌레스 영국 국방장관은 "폴란드 국경에 병력 350명을 추가 파병, 이미 주둔 중인 100명에 더해 영국군을 증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셀 보렐 외교 안보 정책 고위 대표는 이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워싱턴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냉전 종식 이후 유럽 안보에 가장 위험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14만명의 병력은 차를 마시러 간 게 아닐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우크라 갈등 속 푸틴 대통령의 향후 계획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여러 추측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련의 과정을 고려할때 현재 위기 상황을 쉽게 불식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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