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김원웅 광복회장이 광복회 수익사업을 이용한 비자금 조성·횡령 등 논란 속에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의 김 회장은 2019년 6월 취임 이래 역사관 논란과 정치 편향·막말 시비 등 갖은 구설수에도 광복회장직을 유지해왔으나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일각에선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가 내달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여(對與) 여론 악화 가능성을 의식해 회장직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후보는 작년 11월 김 회장을 예방한 뒤 기자들에게 "김 회장을 존경한다. 내 마음의 광복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회장이 2년8개월 만에 광복회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금전 비리 의혹이다.
국가보훈처의 최근 감사결과에 따르면 김 회장은 광복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내에서 운영해 온 야외 카페 '헤리티지 815' 수익금으로 수천만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옷 구입, 불법 마사지 업소 출입 등 사적 용도로 썼다.
그러나 광복회 내에선 "이번 사건이 아니었어도 김 회장이 2023년 5월까지인 임기를 채우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광복회가 1965년 설립된 후 언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시기가 김 회장 취임 이후인데 대부분 '논란'에 따른 관심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독립유공자 김근수·전월선 선생의 장남인 김 회장은 1972년 공화당 사무처 공채에 합격했으며, 이후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1992년엔 민주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0년엔 한나라당, 2004년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선거 유불리에 등에 따라 정당을 갈아타며 16·17대 의원을 지냈다.
김 회장은 정치인 시절부터 '반미' '친북' 성향 언사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왕왕 있었다. 이 때문에 그가 2019년 제21대 광복회장 선거에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꺾고 당선된 건 그야 말로 '이변'으로 여겨졌다.
반면 일각에선 '친일 청산'을 공약했던 그의 광복회장 취임에 "이제야 일본에 속 시원하게 말할 회장이 나왔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 회장은 2019년 8월15일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발(發)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따른 한일 양국 간 갈등에 대해 "일본이 한국 경제를 흔들고 민심을 이반시켜 그들이 다루기 쉬운 친일 정권을 다시 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가 앞장서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외치던 분위기 속에 김 회장이 '사이다 발언'을 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동시에 '광복회장이 지나친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 회장은 이듬해인 2020년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선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 대한민국은 민족 반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광복회장으로서 그 정도 문제의식은 말할 수 있다"고 옹호했으나, 광복회가 야권과 일본에만 비판적이란 지적을 막진 못했다.
김 회장은 이외에도 그간 공식 석상 등에서 "안익태는 친일, 백선엽은 사형감" "박근혜보다 일제 때 항일무장을 투쟁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김정은이 낫다" "해방 이후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점령군이었다" "차기 대통령은 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이와 관련 김 회장 퇴진 운동에 참여했던 광복회원 A씨는 "'광복'이란 개념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기 때문에 친일 청산의 가치에 반대하는 회원은 아무도 없다"면서도 "김 회장이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과 광복회장으로서 할 말을 구분하지 않고 지나치게 극단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 취임 이후 광복회가 민주당 출신 인사들에게 각종 상을 수여한 점도 시빗거리가 됐다.
특히 작년 1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딴 '독립운동가 최재형상(賞)'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수여했을 땐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가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사업회가 이미 '최재형상'을 시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복회가 협의도 없이 같은 이름의 상을 만들어 "특정 정치권 인사 등에게 상을 줘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고 독립운동 정신도 퇴색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가운데 김 회장 취임 이후 광복회 내부에선 '친(親)김원웅 대(對) 반(反)김원웅' 분열 양상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일례로 작년 4월11일 제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추념식에선 김 회장에 반대하는 한 광복회원이 김 회장의 멱살을 잡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광복회는 해당 회원을 '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제명했다.
작년 6월에도 김 회장에 반대하는 회원이 회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인분을 뿌린 사건이 발생했다. 광복회는 해당 회원을 경찰에 신고해 형사 처벌을 요구했고,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건을 주도했던 B씨는 "김 회장은 자신에 반대하면 '토착왜구' '일베'로 몰아붙이는 등 조직 사유화에 집중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5일 언론보도를 통해 김 회장이 광복회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내에서 운영하는 야외 카페의 수익금을 횡령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됐고, 이틀 뒤 보훈처가 그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면서 광복회 내 '반김'(反金) 인사들로부턴 재차 김 회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들끓었다.
김 회장은 이달 10일 보훈처가 '김 회장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취지의 감사결과를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나 그는 이날 오전 배포한 입장문에서 "최근의 사태에 대해 부끄럽고 민망하다. 회원 여러분의 자존심과 광복회의 명예에 누를 끼친 것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로써 김 회장은 광복회장직을 내려놓게 됐지만, 광복회 내에선 "차제에 김 회장과 함께 일했던 집행부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김 회장의 비자금 조성·횡령 등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 진행될 경우 광복회 내 다른 관계자들 중에서도 추가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인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그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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