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안드레이 쿨릭 주한러시아대사가 최근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對)러시아 제재 동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쿨릭 대사는 유럽과 대서양 세력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쿨릭 대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소재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자국 입장을 설명하면서 특히 우리 정부의 대러 제재 동참 결정에 대한 질문에 "한국 정부가 제재에 동참하는 건 기쁜 소식이 아니다"며 "우리의 깊은 유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한러관계는 수교 이후 30년 동안 역동적·긍정적으로만 발전해왔는데 이런 추세가 이제 바뀔 것 같다"면서 "한국의 '신(新)북방정책' 덕분에 양자 관계가 발전해왔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유감스럽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이 개시되자 외교부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유엔헌장 원칙을 위배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우리 정부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취한 각종 제재조치에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쿨릭 대사는 "지금 한국이 외부로부터 강력한 영향이 (러시아에) 제재를 하게 만든 유일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미국 등이 압력 때문에 대러 제재에 동참하게 됐단 뜻을 풀이된다.
쿨릭 대사는 특히 가스·철도·전기 등 분야의 남북한 및 러시아 간 3각 협력 사업을 거론, "러시아에 가해진 제재는 이런 프로젝트 추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남북러 협력 프로젝트는 사실 핵문제 해결,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등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그러나 한국이 정말 이 모든 걸 필요로 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도 말했다.
쿨릭 대사의 이 같은 발언엔 우리나라의 대러 제재 동참이 한러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뜻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핵심 우방국 가운데 하나다.
쿨릭 대사는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8년간 우크라이나 정권으로부터 학대·학살을 겪어온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안보위협에 따른 대응 차원이라는 기존 러시아 측 주장을 되풀이했다.
러시아 측은 2014년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축출된 뒤 우크라이나가 '극단주의자'들에게 넘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간스크주주) 주민들이 '서방이 지원한 세력'의 민족주의, 네오나치즘에 피해를 보고 있기에 러시아는 이들을 돕고자 한다는 얘기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내 친러 성향 분리주의자들의 본거지다. 러시아 측은 그간 이 지역의 반군들을 물밑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쿨릭 대사는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나토의) 비확장'을 추구할 러시아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며 "동맹을 맺을 자유를 최우선에 놓되 다른 국가 안보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그에 따른 우크라이나 영토 내 나토 병력 배치는 이미 정해진 일"이라며 "이런 시나리오에선 러시아를 향한 기습 공격 위험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쿨릭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단순한 이웃나라가 아니라 역사·문화에서 (러시아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든 이점을 누리면서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며 "러시아의 적은 우크라이나 정권과 그 정권을 장악한 '나치'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쿨릭 대사는 이날 회견에서 "한국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서방 시각에서만 보도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내 민간인 사상자 발생 등에 대한 보도가 상당 부분 부정확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우크라이의) '나치' 세력이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쓰는 사건이 많이 있었다. 피해 민간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용까지 지급했다"며 "최근 우크라이나 군인 13명이 섬을 지키다 (러시아군에) 희생됐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곳에 있던 우크라이나 장병 82명은 지금 건강하게 러시아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 외교부는 이날 쿨릭 대사 회견에 앞서 "대러 전략물자 수출을 차단하고, 비전략물자에 대해선 관계부처 간 조치 가능한 사항을 검토해 (통제 품목을) 조속히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 같은 결정을 미국 측에도 외교채널로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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