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23일 정기총회를 연다. / 사진=뉴시스
62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대표 경제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쇄신의 기로에 섰다. 출범 이후 수십년 동안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재계 맏형 역할을 톡톡히했지만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 이후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한차례 혁신안을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윤석열 정부들어서도 회복은 요원하다. 결국 허창수 회장이 사임 카드를 꺼내들며 대대적인 쇄신을 선언했지만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오는 23일 정기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과 함께 중장기 발전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미래발전위원장을 맡아 혁신을 지휘하고 있지만 총회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회장직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인물이 없어서다.

재계에서는 당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유력한 후보로 예상했지만 모두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등도 후보로 거론되지만 명확하진 않은 상황이다.

재계 총수들은 국정농단에 연루됐던 전경련의 회장을 맡는 것에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서 K스포츠와 미르재단을 위한 기업 후원금 모금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며 정경유착의 고리로 낙인찍혔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모금,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비자금 제공,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한나라당 대선 자금 차떼기 사건 등 수차례 부정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었지만 국정농단 사태의 후폭풍은 과거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지난 2017년3월24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협회 수뇌부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국정농단 직후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잇따라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운영 예산과 규모가 크게 줄었고 감원·임금 삭감·복지 축소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현재 전경련 회원사는 420여개로 국정농단 사태 이전인 600여개보다 크게 축소된 상황이다.
2017년 허창수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쇄신안을 내놨지만 신뢰회복에 이르진 못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내내 모든 행사에서 철저히 배제돼 '전경련 패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재계와의 스킨십을 강화했지만 윤 대통령의 경제단체장 비공개 만찬,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경제사절단에 허창수 회장이 잇따라 배제되는 등 전경련을 대하는 태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의 입지가 커지면서 전경련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허 회장이 최근 사임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계의 시선은 23일 총회로 향한다. 이날 공개될 차기 회장과 쇄신안에 따라 전경련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총회에 앞서 최근 전경련은 '국민 소통', '미래 선도', '글로벌 도약'을 키워드로 '뉴 웨이 구상'(가칭)의 기본 틀을 공개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며 한국의 G8 도약을 이끌 개척자로 재탄생한다는 목표다.

이웅열 전경련 미래발전위원장은 "전경련의 변화는 그동안 전경련이 했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것들을 찾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고 진정성 있게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