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호퍼는 말이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그의 그림처럼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단음절의 짧은 단어를 사용해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 때 그가 두 음절, 혹은 세 음절 단어를 늘어놓는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게 그와 알고 지냈던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 '캐서린 쿠'의 회상이다(<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 캐서린 쿠).
쿠는 호퍼와 20년 가까이 정기적으로 만났지만 그를 결코 가깝게 느끼지 못했다. 그냥 '호퍼'라고 부르지 못하고 언제나 '호퍼 씨'라고 불렀다. "그의 근엄한 침묵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이유를 추측했다.
둘은 예술에 대한 취향을 공유하면서도 성격 차이로 자주 다퉜다. 과묵한 호퍼 입장에선 조세핀의 수다가 피곤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조세핀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든 굳게 입을 닫고 있었을 호퍼를 떠올리자니…마치 내가 조세핀이라도 된 듯 암담한 심정이다. (아무래도 호퍼보다는 조세핀에게 감정 이입하게 됨을 양해해주시길.)
둘 사이에서 말이란 주고받는 것이 아니던가. 홀로 말하는 건 외로운 일이다. 들어주기 위한 침묵은 따뜻하지만 말하지 않기 위한 침묵은 차갑다. 쿠는 쉴 새 없이 말했던 조세핀을 은근히 불만스럽게 떠올렸지만, 호퍼의 오랜 침묵은 위협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림을 보면서 실존했던 두 사람을 생각했다. 호퍼의 그림 속 모델은 모두 조세핀이다. 늘 홀로 말했던 조세핀도, 내내 말이 없었던 호퍼도 자주 쓸쓸했을 것 같다. 호퍼의 그림이 유독 고독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조민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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