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 뉴스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6년 전 오늘 대구지방법원 제11호 대법정에선 역사적인 재판이 열렸다.

한국 사법사상 처음 국민참여재판, 즉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해 형량에 대한 의견을 낸 것이다.

관습법 체계인 미국의 경우 배심원단 결정은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재판부가 참고할 뿐이지 구속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은 국민들의 법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게 됐으며 법원과 검찰도 이를 존중하는 쪽으로 흐름을 보이고 있다.

◇ 국민참여재판 아니었다면 옥살이 가능성…강도미수에 그쳤지만 사람 다쳐

대한민국 국민참여재판은 2007년 6월 1일 제정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8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2008년 2월 12일 대구지법 제11호 법정에서 열렸다.

피고인은 그 전해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A씨(70·여) 집에 과도를 들고 들어가 금품을 훔치는 데 실패하고 A씨에게 상처를 입힌 B씨(당시 27세).

B씨는 A씨가 피를 흘리자 놀라 병원까지 데려 가던 중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 붙잡혔다.

검찰은 "강도상해죄는 실제 돈을 뺏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돈을 빼앗으려다가 사람을 다치게 한 범죄를 말한다"며 죄를 엄히 물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변호인은 "B씨가 A씨를 병원으로 데려가던 중이었던 점, B씨가 사실상 주민들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한 점,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을 들어 선처할 필요가 있다고 읍소했다.

◇ 첫 참여재판, 230명의 배심원 후보 중 예비 배심원 3명 등 12명 뽑아

첫 국민참여재판에 엄청난 관심이 쏠린 까닭에 대구지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지역해 20세이상 남녀성인 230명에게 선정기일 통지서를 발송했다.

이어 3명의 예비 배심원 후보를 포함해 모두 12명의 배심원을 뽑았다. 남녀 각 6명씩으로 30대가 8명, 40대가 3명, 20대가 1명이었다.

당시 재판은 치열한 법리 논쟁, 검찰과 변호인이 배심원들에게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 이성과 함께 감성에도 호소하려는 변호인 측 작전 등으로 무려 9시간여가 걸렸다.

◇ 배심원 9명 전원 일치, 집행유예 의견…재판장 "평결을 존중, 피고인을 석방"

배심원 9명은 머리를 맞대고 B씨 형량을 논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집행유예' 의견을 제시했다.

배심원 결정을 받아 든 재판장 윤종구 부장판사는 배석 판사들과 논의 끝에 "배심원 의견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은 만큼 평결을 존중해 피고인을 석방합니다"라며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및 사회봉사 명령 80시간을 선고해 B씨를 석방했다.

◇ 방청석 만원, 국내외 취재경쟁…재판장 본격 재판에 앞서 진행절차 설명

첫 국민참여재판인 만큼 대구지법 11호 대법정은 이를 지켜보려는 시민들로 만원사례를 이뤘다.

여기에 국내 취재진은 물론, 미국 뉴욕 타임스, 일본 NHK, 아사히신문, 후지TV, TBS(도쿄방송) 등 외국 언론들도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검찰도 검사 1명을 파견해 재판 진행 방식, 배심원 반응, 공소 검사의 설명방법 등을 꼼꼼히 살피는 등 큰 관심을 나타냈다.

재판장 유종구 부장판사는 배심원 선서를 마친 배심원들에게 재판 진행 순서 즉 검사의 공소장 낭독→ 변호인 모두 진술→재판장의 쟁점정리→증인 심문→피고인 조사→변호인 및 피고인 최후 진술→평의→선고 등의 절차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한편 국민참여재판은 모든 재판에서 채택되진 않는다.

1심 형사재판, 원칙적으로 합의부 재판에서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