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 통신 지원 감사패(왼쪽)와 1984년 3월 열린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 현판식의 모습. /사진=SK텔레콤
1984년 3월부터 통신공사의 자회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차량전화 및 무선호출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이동통신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무선통신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개척자의 사명감으로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한 결과, 1988년 4월에는 공중전기사업자로 지정, 한국이동통신으로 거듭나면서 독립사업자로 새 출발했다.
공중전기사업자지정은 우리나라가 이동통신의 대중화시대로 들어섬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독립사업자로서 빠르게 기틀을 잡아가는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휴대용 이동전화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휴대전화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1990년을 전후해 통화품질 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이동통신은 집중운용보전시스템(CNSS) 개발 및 운용, 세계 최초 무선호출전용교환기 TDX-PS의 개발, 이동전화 교환기간의 상호 접속기능을 가진 IS-41A의 세계 최초 운용, 관문교환기 개통 등 장비 국산화와 운용 기술의 자립에 있어서도 굵은 획을 그으며 국내이동통신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1년 12월에는 이동통신 100만가입자를 돌파하면서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를 활짝 열 수 있었다.
1989년 8월에는 대외적인 통신시장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재투자기관 최초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로써 공익과 기업이윤 극대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구축은 물론 기업의 위상도 한층 강화할 수 있었다.
1990년대로 진입하면서 한국이동통신은 경영혁신을 가속화하며 통신시장의 개방 및 이동전화와 무선 호출서비스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등장에 따른 치열한 경쟁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리고 국내 통신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거쳐 선경그룹에 인수, 민영화됐다.
이처럼 경쟁체제의 도입과 민영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이동통신서비스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이동통신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