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이 18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3월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비례대표 후보 선거운동 제한 규정 헌법소원심판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홍세화 장발장 은행장. /사진=뉴스1
18일 뉴스1에 따르면 홍세화는 이날 낮 12시쯤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입원 중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다. 국립암센터와 녹색병원을 오가며 항암 치료를 해오던 그는 한 차례 상태가 호전됐다가 지난해 가을쯤부터 악화됐다. 이후 지난주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표 진보 지식인으로 꼽히는 고인은 지난 1977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 입사해 1979년 해외 지사 근무 도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당시 경험을 풀어낸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지난 1995년 출간되면서 고인은 한국에 '톨레랑스'(관용)를 퍼뜨린 지식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1999년 출간한 문화 비평 에세이 '센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지난 2001년에는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기획위원과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지난 2011년에는 한겨레가 발하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을 역임했다. 지난 2013년에는 계간지 '말과 활'을 창간했다.
지난 2012년에는 진보신당(현 노동당)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2015년부터는 벌금 미납으로 옥살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비영리단체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 활동해왔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며 장례는 '한겨레 사우장'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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