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중 연금 적립금 선두를 달리는 은행권은 자사 고객인 집토끼 지키기에 나섰다. 은행의 텃밭으로 불리는 퇴직연금 시장에 증권사와 보험사가 유리한 수익률을 홍보하며 활발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00조878억원으로 이중 은행권 적립금은 210조2811억원(52.56%) 규모다. 증권사(96조5328억원)와 보험사(93조2654억원) 적립금의 두 배를 웃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42조7010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39조5015억원), 하나은행(37조78억원) 순이다.
은행의 연금 적립이 많은 건 그 동안 안정적인 운용을 선호하는 퇴직연금 고객의 특성 때문이다. 퇴직연금은 통상 소득이 없는 은퇴자의 노후를 책임질 최후 보루(자금) 성격을 지닌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운용으로 원금 손실을 피하려는 고객들이 수익률 변동성이 크지 않은 은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 기업은 은행에 퇴직연금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상품을 지정한다. 급여계좌를 만들거나 기업대출 계약을 맺을 때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인 운용 탓에 수익률은 저조하다. 3분기 말 기준 최근 1년간 평균 수익률을 보면 은행들의 DB 원리금 보장형 평균 수익률은 3.64%다. 퇴직연금 운용을 두고 경쟁하는 증권사 평균 수익률(4.29%)과 보험사 평균 수익률(4.08%)보다 낮다.
같은 기간 은행의 DC 원리금 보장형 평균 수익률은 3.47%로 보험사 평균(3.45%)을 근소하게 앞섰으나 증권사 평균(4.45%) 보다 약 1%포인트 가량 낮다. 개인형 퇴직연금(IRP)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의 IRP 원리금 보장형 평균 수익률은 3.33%로 증권사 평균 수익률(4.65%)보다 1.32%포인트 낮았다.
100세 시대, 인간의 길어진 수명 만큼 퇴직연금 가입자가 안심하고 노후 자산을 운용하려면 수익률 개선이 시급하다. '연금 선진국' 미국은 이른바 은퇴 후 연금으로 먹고사는 '연금 백만장자'가 늘고 있다. 미국 최대 퇴직연금 자산운용사 피델리티가 올해 상반기 자사 401K(미국형 퇴직연금) 가입자 중 계좌에 100만달러(약 13억8000만원) 이상 잔액을 가진 가입자를 집계한 결과 37만8000만명에 달했다.
미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연금 운용 바구니에 비원리금보장 투자 상품을 적극 운용해서다. 일본은 적립금 중 절반 이상이 원리금보장형에 쏠려 2016~2020년 평균수익률이 기금형 3.78%, 규약형 3.36%에 그쳐 퇴직연금 실패 사례로 꼽힌다.
퇴직연금 시장의 '터줏대감' 은행이 이번 실물이전 제도 시행에 따라 기존 안정성에 운용 능력까지 끌어올려 수익률을 제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익 다각화에 성공한 비결은 퇴직연금 상품 등 리테일(개인투자자) 고객을 대상으로 한 수익률 제고 전략이었다는 걸 기억하자.
이남의 머니S 시장경제부 금융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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