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거주자의 해외 주식 투자가 경상수지 흑자와 비슷한 규모를 기록하면서, 수급 구조로 인한 원화 약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김영환 한국은행 경제통계1국장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5년 12월 국제수지(잠정) 기자설명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해 국내 거주자의 해외 주식 투자가 경상수지 흑자를 웃도는 규모로 이뤄졌다. 이는 외환시장에서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표면적으로는 경상수지 흑자로 외화가 유입되는 모습이지만, 실상은 해당 자금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해외로 다시 빠져나가는 구조인 것이다.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누적 경상수지는 1230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2015년(1052억달러)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해외 주식 투자도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국내 거주자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1143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대비 722억달러 증가한 수치다. 1년 만에 약 3배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해외 채권 투자 규모 259억3000만달러를 합친 해외 증권 투자는 총 1402억8000만달러다.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해 주체별로 보면 ▲자산운용사·증권·보험 등 금융기관이 421억달러 ▲국민연금 등 공적기관이 407억달러 ▲개인 투자자가 314억달러를 기록했다. 김영환 한국은행 경제통계1국 국장은 "자산운용사를 통한 개인의 해외 ETF(상장지수펀드) 투자를 고려한다면 지난해 개인의 직·간접 해외 주식투자 규모는 국민연금 등 공적기관의 투자 규모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지난해 전체 거주자의 해외 주식 투자 급증이 외환 시장 수급 측면에서 경제 펀더멘털과 관련한 경상수지 흑자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갖는 환율 안정 효과가 막대한 해외투자로 희석됐다는 얘기다.
구조적 '머니 무브' 본격화…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 재편이 원화 약세 주도
.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전문가들도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자본 유출이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외투자에 따른 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과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 안정에 기여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달러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크게 훼손된 것은 아니지만, 외환 수급 요인으로 원화가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해외 투자 확대는 원화 약세와 일정 부분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분석은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보고서 '고환율, 위기의 징후인가? '엔-캐리' 현상에 답이 있다'에서도 확인된다. 신 전 위원장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원인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부실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과거 일본이 겪었던 '엔-캐리 트레이드'와 유사한 구조적 변화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의 경제위기와 달리,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경상수지 흑자로 축적된 부를 해외 자산으로 이전하는 구조적 '머니 무브'(money move)가 본격화됐다는 설명이다.

신 전 위원장은 "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급증과 대기업의 해외 자금 예치 등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 재편이 원화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며 "현재의 고환율은 금융 자유화와 미국 우선주의 등 지경학적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