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가 11일 열릴 정례회의에서 조각투자 전용 장외거래소(유통플랫폼) 예비인가 심사 최종 결과를 발표할지 주목된다. /사진=뉴시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이 아니라 동료 다윗을 짓밟고 스스로 골리앗이 되려는 다윗이다."
금융당국의 조각투자 전용 장외거래소(유통플랫폼) 예비인가 발표를 앞두고 막판 진통을 겪는 가운데 핀테크 업계 관계자가 루센트블록을 향해 이같이 날을 세웠다. 루센트블록이 내세우는 '거대 자본(골리앗)에 맞서는 스타트업'(다윗) 프레임은 스스로의 선택을 뒤집는 행위라는 비판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날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앞서 두 차례 미뤘던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결과를 발표한다.


업계는 금융위가 지난 1월14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조각투자 전용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사업자를 확정해 발표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안건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탈락이 유력하다고 판단한 루센트블록 컨소시엄이 "심사 공정성·스타트업 기회 박탈"을 거론하며 여론전을 펴자 금융위가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금융위는 같은 달 28일 열린 정례회의에서도 해당 안건을 상정하지 않아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이 같은 시각에 설득력을 더했다.
"367조 시장 진입 지연, 루센트블록 억지서 비롯"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결정 지연이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은 루센트블록의 억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동안 혁신금융서비스(샌드박스)를 받은 조각투자 업체들은 자산 발행과 유통을 동시에 할 수 있었지만 샌드박스 기간이 끝난 뒤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각 업체는 발행사(발행)와 장외거래소(유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6개 샌드박스 업체 중 5곳은 발행을 택했다. 각자의 강점인 자산 발굴·상품 설계 역량으로 승부하겠다는 판단이다.

유통은 한국거래소(KRX), 넥스트레이드(NXT) 등 대형 거래소 인프라와의 경쟁인데 루센트블록은 유일하게 유통을 선택했다. 금융위는 루센트블록에 여러 차례 "단독 구조보다는 대형 거래소가 참여하는 컨소시엄 구성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루센트블록은 이를 최종 사업 구조에 반영하지 않았다.

반면 루센트블록 관계자는 "대형 거래소가 참여하는 컨소시엄 구성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설명이나 권고를 받은 사실은 없다"며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도 금융당국이 특정 기업에 대해 '대형 거래소 참여를 전제로 한 컨소시엄 구조'를 권고하는 것 자체가 혁신금융서비스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조각투자 업계 관계자는 "루센트블록이 발행을 택했으면 자신들의 강점으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스스로 체급이 다른 유통 시장을 택해놓고 대형기관과의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발행 대신 유통을 택한 다른 스타트업들은 '독자 생존' 보다 컨소시엄 '연대'를 통한 실리를 택했다. 자본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존과 시장 개설을 위해 KDX(한국거래소-코스콤) 컨소시엄이나 NXT(넥스트레이드-뮤직카우) 컨소시엄에 합류해 연합군을 결성했다.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자존심이 없어서 대기업 컨소시엄에 들어간 게 아니라 2030년 367조원 도약이 전망되는 시장을 하루라도 빨리 열기 위해 연대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센트블록이 "샌드박스 성과를 인정해달라"고 외치지만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로 샌드박스 실증을 거친 기업들도 모두 컨소시엄 방식을 택했다.

뮤직카우는 세계 최초로 음악저작권 조각투자 모델을 만들어 누적 발행액 수백억원을 기록했다. 카사코리아는 부동산 조각투자의 선구자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 모델을 검증받았다.
발표가 두 번이나 지연된 조각투자 전용 장외거래소(유통플랫폼) 예비인가 최종 결과가 11일 열릴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결론 날 지 주목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펀블은 상업용 부동산 수익권을 디지털 증권으로 발행해 소액투자 모델을 실증했고 세종디엑스 역시 샌드박스를 거쳐 조각투자 사업을 영위했다.
샌드박스 출신이 아닌 조각투자 기업인 바이셀스탠다드는 부동산을 넘어 희소성 높은 현물·선박·IP(지식재산권)까지 다루는 멀티에셋 모델을 준비하며 KDX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이들은 모두 "장외거래소 인가(유통)는 샌드박스(발행)와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수십억 원을 들여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했다.

한 조각투자 업계 관계자는 "우리도 샌드박스 출신이지만 드론 실험(샌드박스) 성공했다고 국제공항(거래소) 면허를 달라고 떼쓰진 않는다"며 "체급의 차이를 인정하고 준비한 기업들을 바보로 만드는 격"이라며 루센트블록의 행보를 꼬집었다. 글로벌시장과 격차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잘못된 심사 선례를 남기면 시장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더했다.
인가 표류 장기화에… 업계 "나쁜 선례 남길 우려"
사태 장기화에 피해는 국내 시장을 넘어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토큰증권 시장은 발행과 유통의 선순환으로 작동한다. 거래소가 구축돼야 발행된 증권이 유통되고 유통이 활성화돼야 투자자가 유입된다. 투자자가 모여야 신규 상품 개발도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가 발생한다.

현재는 거래소 인가조차 막혀 선순환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발행된 증권이 거래되지 못하면 투자자 유입도, 신규 상품 개발도 멈춘다"며 "법제화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숨지었다.

미국 NYSE(뉴욕증권거래소)는 이미 24시간 토큰증권 거래 플랫폼 추진을 발표했다. 일본과 독일은 제도권 거래소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 중이다.

한국은 토큰증권법까지 통과시키고도 정작 유통 인프라 구축 앞에서 멈췄다. 독립 외부평가위원회가 심사하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심의한 결과가 루센트블록의 정치적 호소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금융 인가 체계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인가 절차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시장에 자금을 넣는다"며 "현 상황은 한국 토큰증권 시장의 신뢰만이 아니라 금융당국의 의사결정 체계 자체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최근의 사태를 의식한 듯 심사 결과가 나오면 과정부터 명확히 설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위원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도의 취지를 꼼꼼히 짚어보고 인가 운영 방안, 심사 기준에 따라 적법하고 공정·엄정하게 심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판단했는지 근거를 소상히 설명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