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몸담았던 조직이 비난의 대상이 될 때, 기분이 묘해진다.
먼저 드는 생각은 떠나서 다행이었다는 것이다. 세상만사(世上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으니, 험한 꼴을 비켜간 셈이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생각이 따라온다. 조금 더 오래 있었더라면, 지금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는 없지만.


어느 쪽이든 과거가 부정되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들이 어떤 집단을 비난하는 방식이, 그 안에 있었던 나의 시간을 함께 욕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라도 목소리를 내기란 만만하지 않고, 침묵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는 쓰지 못했던 문장들이 이제는 쉽게 다가온다.


■ 장면 1
방 안은 조용했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분위기가 한 번 꺾인 뒤부터였다.
몇몇은 시선을 내렸고, 몇몇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노트북을 두드렸다.
누군가는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영리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침묵했다. 입을 다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의견이라는 듯이.
(좋은 기자의 태도는 자리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배웠다. 이미 기자가 아니었지만, 그 습관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 장면 2
회사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멀리.
나는 그때, 커질수록 옆을 보고, 때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돌아온 것은 질책이었다. 아직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말.
문을 나서며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의 얼굴보다, 나 자신의 불안이 더 또렷했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조직 생활을 하고 있다면, 꽤나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평가, 보상, 다음 기회. (더 이상) 말하지 않는 데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겪고도 또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나의 감각이 때로는 성가시다. 하지만 그것을 애써 고칠 생각은 없다. 불편함이 사라지는 순간, 아마도 내가 나를 배신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겠다.

조직이 성장할수록 침묵은 빠르게 퍼진다.
상처받은 사람도, 이상한 결정도, 대부분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각자의 안전이 된다.

그러다 그 힘이 흔들리면, 풍경은 바뀐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말들이 쏟아진다.
조금 전까지 조용하던 곳이 갑자기 정의의 광장이 된다.
쓰러진 대상은 그냥 두어지지 않는다. 탈탈 털리고, 자근자근 밟힌다. 넘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미셀 드 몽테뉴는 『에세』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자신이 비겁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때의 조용한 방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과거의 침묵을 견디는 대신, 현재의 분노로 자신을 씻어낸다. 쓰러진 대상을 더 세게 밟을수록, 그에게 고개를 숙였던 시간이 더 빨리 지워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분노는 종종 정의보다 먼저 온다.
정말로 옳아서가 아니라, 예전에 옳지 못했다는 기억이 너무 아프기 때문일 거다.

개인도, 군중도 대개 뒤늦게 용감해진다. 상대가 강할 때는 말하지 않고, 약해졌을 때에야 외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이렇게 적었다.
"악은 사악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그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따진 것이 아니라, 안전과 불안을 계산했을 뿐이다.
손익이 맞는 쪽으로, 아주 조용하게.

몰락한 힘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언제나 비슷하다.
강할 때는 침묵. 약해지면 정의.
그저 유리한 쪽에 먼저 섰을 뿐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뒤늦은 정의는 정의라기보다 계산에 가깝다.
그리고 침묵이든 웅변이든,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들이 오랜 시간에도 살아남을 진실인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들은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쓰였다.
니체는 도덕으로 포장된 복수를 말했다.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 글이 묻고 싶은 것은, 아마도 이 질문일 것이다.

그들이 강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그들이 악이었을 때, 당신은 정말 선이었는가.
김영태 아케이드 프로젝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