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에 달하는 경사로 초입에서 차량 앞유리는 어느 순간 하늘만 비추기 시작했다. 운전석에서는 코스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인스트럭터의 지시대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타스만은 운전자 개입 없이 천천히 차체를 끌어올렸다. 기아가 왜 이 차를 '정통 픽업'이라고 강조하는지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시승에 동원된 차량은 오프로드 주행에 특화된 전용 트림인 '타스만 X-Pro' 순정 모델이다. 기본 모델 사륜구동(4WD) 대비 28㎜ 높은 252㎜의 최저 지상고를 확보하고 올-터레인 타이어와 험로 전용 사양을 가득 채운 핵심 라인업이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의 오프로드 코스는 통나무, 30㎝ 높이의 범피, 사면 경사로, 자갈, 모래, 머드, 수로 등 국내 최고의 상설 험지 환경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진 범피 코스에서는 타스만의 진정한 하체 능력이 도드라졌다. 일반적인 이륜구동 차량이라면 헛바퀴를 돌며 갇혔을 노면이지만 타스만의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과 디퍼렌셜 록(차동기어 잠금장치) 기능이 활성화되자 접지력이 살아있는 반대쪽 바퀴에 토크를 즉각적으로 배분하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덩이를 탈출했다.
기아 타스만 X-Pro는 가솔린 2.5 터보 엔진이 장착됐다. 최고출력 281마력, 최대토크 43.0kgf·m의 힘을 내는 파워트레인은 수치 이상의 묵직한 견인력을 현장에서 증명했다.
이러한 하드코어 오프로드 기술의 정점은 X-Pro 트림의 전용 무기인 'X-TREK' 모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스트럭터의 지시에 따라 기어를 중립(N)에 놓고 전자식 사륜구동 레버를 저단 기어(4L)로 체결하자 차체자세제어장치(ESC)가 1단계 분리되며 시스템이 활성화됐다.
웅덩이가 깊게 파이고 미끄러운 언덕 경사로를 내려올 때 페달 조작 실수로 차가 미끄러지거나 전복될 위험을 원천 차단해 주는 기술이다. 주행 내내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화면의 오프로드 페이지를 통해 차체의 기울기, 조향각, 구동력 배분 등을 실시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어 심리적인 안정감은 배가됐다.
암반이나 돌부리를 직접 확인하며 진입 경로를 수정할 수 있어 험로 초보자에게 유용했다. 경쟁사 일부 차량처럼 차체 하부를 완전히 투영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충분히 실용적이었다.
거친 산악 하산길을 내려올 때는 다운힐 브레이크 컨트롤(DBC)이 든든하게 뒤를 받쳤다. 장시간 내리막길에서 풋 브레이크만 밟을 경우 브레이크 디스크가 과열돼 제동력이 상실되는 베이퍼 록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DBC 시스템이 기울기를 스스로 감지해 엔진 브레이크와 제동 압력을 조절하며 운전자를 보조했다.
기아 타스만은 정통 픽업이 갖춰야 할 본연의 강인함과 험로 돌파 능력을 개조 없는 순정 상태 그대로 완벽히 입증해냈다. 오프로드를 전문적으로 즐기는 마니아층은 물론, 가혹한 작업 환경이나 아웃도어 환경에서 강력한 구동력을 필요로 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수입 픽업을 대체할 확실하고 강력한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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