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를 뒤로 묶은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팅 시간에 3분 늦은 그는 "스미마셍(실례했습니다)"이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주변에 보좌진은 없었다. 검은 티셔츠엔 컴퓨터 코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일본 국회의사당과 총리 관저 등이 모여 있는 '나가타초의 문법'을 거스르는 주인공은 안노 다카히로 팀 미라이 대표(참의원)였다. 팀 미라이는 일본 중의원에 11석의 비례의석을 보유한 신생 정당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안노 대표가 25일 오후 3시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동행미디어 시대 주최로 열린 '한일 AI 정치 혁신 특별대담'을 위해 만났다. 이 대표와 안노 대표는 모두 이공계를 나와 직접 코드를 짜는 개발자 출신이다. 둘 다 AI를 활용해 정치 입문의 문턱을 낮추고 비용을 줄이는 정치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이날 특별대담에 앞서 두 사람은 약 40분간 자신들이 추진하는 AI 정치 혁신 사례를 서로 공유했다. 당초 2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다양한 질의가 오가면서 길어졌다. 이 대표는 6·3 지방선거에서 개혁신당이 활용하는 'AI 선거 사무장'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정치 신인들의 일정과 동선을 관리해주는 앱이다. 안노 대표는 화면을 가리키며 "이건 내부용 도구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안노 다카히로(安野貴博) 팀 미라이 대표가 지난 25일 오후 3시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동행미디어 시대 주최로 열린 '한일 AI 정치혁신 특별대담'을 위해 만났다. 두 사람이 각 정당의 정치혁신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모습. / 사진=동행미디어 시대
이 대표의 화면이 AI 공약 검증 시스템으로 넘어갔다. 한 지방선거 후보가 입력한 공약에 '69점'이 떴다. 보완이 필요한 지점이 줄줄이 표시됐다. 전국의 약 21만 건의 지방의회 회의록을 분석해 지역 현안을 챗봇으로 알려주는 기능도 붙어 있었다.
이 대표는 개혁신당 지방선거 후보 약 200명이 축하 영상을 요청하면 즉석에서 찍은 영상을 자동 편집해 전송해주는 도구도 선보였다. 안노 대표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안노 대표가 "200명은 정말 힘드시겠다"고 말하자 이 대표는 "유세 중 목이 상했는데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정치 비용은 낮추면서 효율은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영상 편집은 부담이 컸는데 자동화로 그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도 했다. 안노 대표는 "대단하다"며 "이건 정말 당장이라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원하신다면 소스 코드를 공유해 드릴 수 있다"며 "안노 대표도 직접 개발을 하는 분이지만 한국·일본·대만 같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가 이런 방법을 교류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젊은 세대가 정치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안노 다카히로(安野貴博) 팀 미라이 대표가 지난 25일 오후 3시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동행미디어 시대 주최로 열린 '한일 AI 정치혁신 특별대담'을 위해 만났다. 두 사람이 각 정당의 정치혁신 사례를 소개하며 웃고 있는 모습. / 사진=동행미디어 시대
안노 대표가 AI 시연에 나설 차례. 그가 노트북을 열다 말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노트북을 가지러 본인의 사무실로 뛰어간 것. 잠시 뒤 안노 대표가 돌아와 '미라이 의회'(未来議会)라는 화면을 띄웠다. 일본 국회에 올라온 의안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웹 미디어다. 중의원·참의원 법안 심의 단계, 법안의 핵심,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한 화면에 정리돼 있었다. 모르는 단어는 AI에 바로 물을 수 있다.
다음은 팀 미라이의 'AI 인터뷰' 앱이 공유됐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AI가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AI는 참여자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라고 질문했다. 안노 대표는 70시간 분량의 인터뷰 로그를 데이터 분석해 실제 일본 야당 위원회의 국회 질의 논점 발굴에 활용된 실전 사례를 공유했다. 이 대표는 관련 내용을 소개받고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기도 했다.

안노 대표는 후보자의 SNS(소셜미디어) 포스팅을 팩트체크하고 과거 매니페스토와의 모순까지 검증하는 사내 'AI 에이전트'도 소개했다. 이 대표의 관심을 끈 시연은 안노 대표의 '액션보드'였다. 일본에서는 선거 때마다 선거운동원이 전국 게시판 12만 곳에 포스터를 직접 붙여야 한다. 선거운동원이 포스터를 붙이고 액션보드에 입력하면 게임처럼 순위가 매겨지는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플랫폼'이다.

이 대표는 "이건 유튜브나 라인으로 공유할 수 있게 돼 있나" "무엇을 하면 점수를 얻나" 등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안노 대표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이 대표는 선거 현수막을 붙이는 과정에서 이 플랫폼을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안노 대표는 이날 AI 정치 혁신 사례 공유와 대담 이후 "정말 놀랄 만큼 문제의식이 비슷하다고 느낀다"며 "개혁신당과 팀 미라이가 여러 도전을 하며 성공도 실패도 하겠지만 그런 배움을 계속 공유해 나갈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저는 오늘 안노 대표의 시연을 보면서 팀 미라이가 또 한 단계 발전했고 새로운 바퀴를 장착했구나 생각했다"며 "팀 미라이와 개혁신당이 서로의 바퀴를 튼튼하게 만들어 합치면 좋은 민주주의를 견인할 멋진 트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안노 다카히로(安野貴博) 팀 미라이 대표가 지난 25일 오후 3시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동행미디어 시대 주최로 열린 '한일 AI 정치혁신 특별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프로필
▲1985년 서울 출생 ▲서울과학고 졸업 ▲카이스트(KAIST) 수리과학과 중퇴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컴퓨터과학 졸업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설립·대표교사 ▲한나라당·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국민의힘 초대 당대표(헌정 사상 최연소 제1야당 대표) ▲개혁신당 창당·초대 대표 ▲제22대 국회의원(경기 화성시을) ▲제21대 대통령선거 개혁신당 후보(약 292만표 득표)
▶안노 다카히로(安野貴博) 팀 미라이 대표 프로필
▲1990년 일본 도쿄 출생 ▲가이세이고 졸업 ▲도쿄대 공학부 시스템창성학과(AI·머신러닝 전공) 졸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AI 챗봇 기업 베도어(BEDORE·현 PKSHA Communication) 창업 ▲리걸테크 기업 몬테스큐(MNTSQ) 공동 창업 ▲하야카와 SF 콘테스트 우수상(서킷 스위처)으로 SF 작가 데뷔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약 15만표 득표) ▲'디지털 민주주의 2030' 프로젝트 발족 ▲팀 미라이 창당·대표 ▲참의원 비례대표(2025년 7월) ▲팀 미라이 대표로 중의원 총선거 지휘, 비례대표 11석 획득(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