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 속 기업의 후계자 부재 문제에 대해 우리은행이 '생산적 기업승계' 해법을 제시했다. 사진은 우리은행 정진완 은행장. /사진=이예빈 기자
중소·중견기업 경영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재가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은행이 '생산적 기업승계'를 새로운 금융 과제로 제시하며 백년기업 육성에 나섰다.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차원을 넘어 임직원 승계와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고용과 기술력, 공급망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우리은행은 1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생산적 기업승계'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업승계 지원 전략과 추진 현황을 공개했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기업승계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 고용 유지와 기술력 보존, 산업 내 공급망 안정성과 직결되는 경제 과제"라며 "기업의 폐업이나 사업 축소를 막고 일자리와 산업 기반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산적 기업승계 지원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지난 2월 은행권 최초로 설립한 기업승계지원센터는 회계·세무·M&A 전문가들로 구성돼 자녀 승계뿐 아니라 임직원 승계, 제3자 매각 등 다양한 승계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는 후계자 부재 문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기업승계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554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대표자의 70.2%가 50~69세, 20.5%는 70세 이상으로 나타났다. 자녀 승계를 희망하는 비중은 52.7%였지만 43.7%는 아직 승계 방식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현재까지 승계 컨설팅을 받은 102개 기업 가운데 77.5%는 자녀 승계를 중심으로 전략을 수립했으나 후계자가 없거나 친족 승계가 어려운 기업에는 경영진 인수(MBO), 종업원 인수(EBO), M&A 등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승계의 목적은 사업의 지속성"
사진은 함병훈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사진=이예빈 기자
이날 발표에 나선 함병훈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후계자 부재와 승계 과정의 갈등이 기업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함 변호사는 "최근 10년간 기업 사례를 분석한 결과 약 4분의1에서 상속 과정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며 "중소기업은 이보다 더 높은 비율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 준비 없이 창업주가 쓰러진 뒤 자녀들 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져 결국 상장폐지와 회생절차로 이어진 사례, 상속세 재원 마련 과정에서 형제 간 갈등이 발생해 경영권이 외부 주주에게 넘어간 사례, 유언의 효력을 둘러싼 소송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된 사례 등을 소개했다.

함 변호사는 "기업승계의 목적은 사업의 지속성과 기술력 보존, 종업원 고용 유지에 있다"며 "가족 간 분쟁이나 후계자 부재 문제가 있는 경우 승계 대상을 반드시 친족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임직원 승계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제도적 장벽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가업상속공제와 증여세 과세특례 등이 자녀 승계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임직원이 기업을 승계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기 어렵고, 우리사주조합이나 신탁을 활용한 승계 역시 의결권 행사와 자금 조달 측면에서 제약이 많다는 설명이다.
일본, 친족 승계 줄고 M&A 확대
사진은 임재호 우리금융연구소 금융혁신연구실 실장. /사진=이예빈 기자
임재호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실장은 후계자 부재 문제가 먼저 현실화된 일본 사례를 소개하며 생산적 기업승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실장은 "일본은 후계자 부재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약 12만개 기업이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자녀 승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임직원 승계와 M&A 등 친족 외 승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4년 기준 M&A를 포함한 친족 외 승계 비중은 64%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역시 창업 1세대 경영인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가족 중심 승계에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승계 모델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 M&A 비중 꾸준히 증가
사진은 홍승환 삼일회계법인 파트너. /사진=이예빈 기자
중소기업 M&A 시장 확대도 후계자 부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홍승환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국내 중소기업 창업자들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승계 계획이 없는 기업이 60%에 달한다"며 "자녀가 가업 승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 제3자 승계와 M&A 수요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파트너에 따르면 국내 M&A 시장은 연간 약 40조원 규모, 500건 수준으로 형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중소기업 거래가 건수 기준 약 80%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중소기업 M&A 비중이 전체 거래의 74% 수준까지 늘어나는 등 후계자 부재에 따른 승계 수요가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그는 실제 사례로 자녀 승계가 어려웠던 제조업체가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긴 뒤 신규 투자와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해 성장한 경우와 기술기업이 승계 수요를 가진 다른 기업에 매각된 뒤 상장까지 성공한 사례를 소개했다.

홍 파트너는 "과거에는 기업 매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오너 은퇴 이후에도 기업이 지속 성장하고 임직원들이 성과를 공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생산적 기업승계의 중요한 축으로 M&A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향후 5년간 매년 100개 기업의 가업승계를 지원할 경우 누적 기준 고용 1만명 유지, 매출 10조7000억원 보전, 생산유발효과 4699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1934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5년 동안 2500개 이상의 기업에 승계 컨설팅을 제공해 국내 기업의 평균 수명 연장과 경쟁력 있는 백년기업 육성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