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탈모약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거론하자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T타워에서 의료AI·디지털 헬스 기업과 함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수요자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정부가 20~34세 청년들의 탈모 치료 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정된 재원으로 어떤 질병, 어떤 환자를 먼저 지원해줄 것이냐를 정하는 '우선순위 논쟁'인 만큼 당장 생존 위협을 받은 환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초고령 사회를 맞아 탈모 지원보단 '간병비 지원 확대' 등을 주문한다. 건강보험 재정이 빠르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탈모 지원 확대' 방침이 건보 우선순위 논쟁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청년 탈모 환자, 숫자는 주는데 진료비는 늘어
그렇다면 2030세대 탈모 환자들은 얼마나 될까.
'동행미디어 시대'가 지난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5년간 탈모 치료를 받은 2030세대 환자 수는 2020년 10만398명에서 2024년 8만6320명으로 소폭 줄었다.

반면 공단 부담금은 오히려 2020년 101억7399만원에서 2024년 106억1436만원으로 늘었다. 고가약을 많이 사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탈모 치료에선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는데, 정부 방침대로 이를 확대한다면 환자 수도, 공단 부담금도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건강보험의 탈모 지원 확대에 가장 반발하는 이들은 중증질환 환자들이다.

백민환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장은 "중증질환 암 환자들의 신약 지원보다 탈모 지원이 더 시급하냐"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건강보험의 원 취지가 제대로 담겨있는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백 회장이 지적하는 암 환자를 위한 대표적인 신약 지원은 '이중항체치료제'다. 이 치료제는 주로 혈액암 환자들의 면역력을 높여 암을 치료하는 주사제로,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선 매주 또는 격주로 맞아야 한다. 문제는 약값. 건보 적용이 안 되면서 많은 혈액암 환자들이 이 주사제 치료비로만 매달 2000만원에서 2500만원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직장암, 대장암 환자들에겐 '스티바가' 치료제에 대한, 뇌전증 환자들에겐 '세노바메이트' 치료제에 대한 건보 지원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보건정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향후 건보의 보장 범위를 넓힌다면 가장 우선순위로 간병비 지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간병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 역시 피하기 어려운 필수 의료비의 성격이 강하다. 입원료 체계 안에서 간병을 보장하는 방향이 저출산·고령화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탈모 급여화를 추진하려면 예상되는 개선 효과와 재정 소요, 국민 부담 등을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임기 내 건보 누적준비금 완전 소진"
'탈모 지원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지난 11일 국회예산정책처가 건강보험 재정 추계를 발표하면서다. 이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흑자였던 건보 재정이 올해 5조2000억원 적자로 돌아서고, 내년인 2027년에는 8조원까지 적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5조원에 이르는 누적준비금도 기존 예상보다 2년 빠른 2029년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만큼 부족한 재원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해진 상황에서 정치가 정책 합리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탈모 지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복지부 업무보고 당시 "요즘은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탈모 지원 확대를 공개적으로 주문했다.

송기민 한양대 디지털의료융합학과 교수는 "피부질환도 미용의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론 삶의 질과 자존감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탈모 역시 심하면 치료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질병으로 본다는 것과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탈모) 지원 논의가 본격화되면 '다른 질환은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인구센터 연구위원은 "고령층 인구는 급속히 늘고 (건보 재정을) 조달할 인구 집단은 절대적으로 줄고 있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더 큰 파도가 오는 걸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탈모 지원 확대'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다음달 4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확대 방안'을 두고 일반 국민 200명을 선발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숙의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