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과학에 대한 권리'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티모 민센 코펜하겐대 생명과학혁신법 고등연구센터 소장은 22일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내수 시장이나 천연자원에 기댈 수 없었던 덴마크 기업들은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고 특허는 물론 영업비밀, 상표, 임상 노하우, 데이터 거버넌스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무형자산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며 "이러한 자산을 확장 가능하고 신뢰받는 글로벌 제품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반도체 수요 폭증 속에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경쟁력을 바탕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올해에만 20조원 안팎의 초과 세수가 예상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따른 초과세수를 무형자산 등 '생산적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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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 선순환 이뤄야"━
홍성욱 산업연구원 산업경제데이터분석실장은 동행미디어 시대에 "무형자산은 결국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라며 "경제 성장은 노동과 자본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생산성 향상을 통해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시적 초과수익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한때 성공적이었던 성장 모델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한때 '자원의 저주'를 비껴간 나라로 불렸다. 1967년 다이아몬드 광산 발견 이후 채굴 수익을 사회기반시설과 교육·보건 분야에 투입해 성장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중상위 소득국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이아몬드에 기댄 성장은 산업 다각화로 이어지지 못했고 인공 다이아몬드 확산까지 겹치며 주력 산업까지 흔들리고 있다.
국부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글렌마리 랭 전 세계은행(W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보츠와나는 초기 수십년 동안 다이아몬드 수익을 사회기반시설과 인적자본, 교육 등에 투자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면서도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항상 풍부할 것이란 전제 하에 일정 시점 이후에는 자원 수익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한 발전 단계에서 효과적이었던 성장 전략이 다음 단계에서도 계속 유효한 것은 아니다"라며 "국가가 발전할수록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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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500 기업 시가총액 92%는 무형자산━
퀄컴이 대표적 사례다.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인 퀄컴은 자체 생산공장을 두지 않는 '팹리스' 기업으로, 통신 표준특허를 기반으로 한 라이선스 사업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퀄컴의 표준특허 기술을 쓰면 로열티를 내는 구조로 퀄컴의 전체 라이선스 매출은 2024년 기준 61억7100만달러(약 9조4000억원)에 달했다.
세계 경제의 축은 이미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이동했다. 미국 지식재산 가치평가 기관 오션토모에 따르면 S&P500 기업가치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17%에서 2025년 92%까지 확대됐다. 반대로 유형자산 비중은 같은 기간 83%에서 8%로 줄었다. 미국 시가총액 10위 기업들의 면면만 봐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다. ▲엔비디아 ▲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은 대규모 공장 설비가 아닌 반도체 설계 역량, 소프트웨어, 데이터 등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반면 한국 증시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HD현대중공업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 대부분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과 같은 대규모 설비투자와 제조 역량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제조업은 지금껏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린 일등 공신이지만 대외 환경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2023년 글로벌 고금리와 중국 경기 회복 지연, 주력인 반도체 업황 부진이 맞물리면서 연간 수출은 전년 대비 7.4% 감소했고 무역수지는 99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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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창출'보다 '활용'에 역점 둬야━
한국이 무형자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IP의 '창출'보다 '활용'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은 국제특허 출원 건수 세계 4위에 오를 만큼 IP 창출 기반은 갖췄지만 2024년 기술무역수지는 38억4600만달러로 적자를 기록했다. 기술무역통계가 작성된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손승우 전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은 시대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IP 정책은 창출·보호·활용 세 축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금 가장 약한 고리는 활용"이라며 "기술이 꽃을 피우려면 자본이 붙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IP에 직접 투자하는 펀드나 전문 인력이 해외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IP를 실제 수익으로 연결하는 사업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초과 세수 일부를 활용해 'K특허 뱅크'나 'IP 수익화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K특허 뱅크는 대학과 공공연구기관, 중소기업 등에 흩어져 있는 우수 IP를 매입·관리한 뒤 기업에 이전하거나 라이선싱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IP 수익화 펀드는 IP의 상용화 과정에 자금을 공급해 연구 성과가 제품과 서비스, 기업가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투자 기구다.
R&D 평가 체계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대한 국가 R&D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성과 평가는 여전히 질 대신 양 중심으로 이뤄져 연구가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 기업 수익으로 이어지는지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손 전 원장은 "대학이나 공공연구소에서 처음부터 사업화나 활용을 염두에 두고 R&D를 진행하는 비율이 너무 낮다"며 "IP의 질이나 수익 창출 가능성보다 논문과 특허 출원 건수 같은 양적 지표에 평가가 매몰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IP를 창출하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의 20.79%가 초·중·고등학교 교육비로 자동 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손질해 대학과 연구 인력, 기술이전조직(TTO) 등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은 시대에 "1972년에 만들어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도 지금의 인구구조와 산업구조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초중고 교육 투자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대학과 국립대, 교수 인력에 대한 투자는 부족하다"며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초등학생보다 낮은 수준인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장기 성장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벤처기업인들을 만나보면 돈은 있는데 투자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며 "그동안 고등교육과 창업 생태계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탓에 창업이 활발하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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