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만 보면 경고음은 분명하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다시 썼고 인터넷전문은행 신용대출 잔액도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어섰다. 카드론 잔액 역시 43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은행권뿐 아니라 카드론과 보험계약대출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불이 붙으면서 당국의 관리 대상도 전 금융권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당국 입장에서는 가계부채와 금융권 건전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빚을 내 오른 주식이나 집을 샀다가 시장이 꺾이면 손실은 개인에게, 부실 위험은 금융권으로 번질 수 있다. 과열된 투자심리를 방치할 수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지금의 빚투 현상을 개인의 무분별한 투자 성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이미 한 차례 '벼락거지'가 되는 경험을 했다.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했던 시기, 집을 갖지 못했거나 제때 사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산 격차가 순식간에 벌어지는 현실을 목격했다. 성실히 저축한 사람보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산 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큰 자산을 갖게 되는 장면도 봤다.
그 경험은 강한 학습효과로 남았다. 자산 가격이 오를 때 참여하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공포가 시장에 깊게 깔렸다. 지금 증시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모습을 보며 일부 투자자들이 신용대출과 카드론까지 동원하는 배경에도 이런 심리가 있다. 단순히 '빚내서 투자하지 말라'는 경고만으로는 이 흐름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제도와 정책이 이 공포를 지금도 충분히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거 사다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했다면, 근로소득과 저축만으로도 일정한 자산 형성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집값과 주가가 오를 때마다 참여자와 비참여자의 격차가 커졌고 정책은 대체로 자산 가격이 달아오른 뒤 대출을 조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대출 규제도 필요하지만 사후적 총량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은행권 대출이 조여지자 카드론과 상호금융 등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번지는 모습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특정 업권을 누르면 다른 업권의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현실화된 셈이다. 자금 사용처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업권만 압박하면 부채는 줄어들기보다 더 취약한 곳으로 숨어들 가능성이 크다.
결국 빚투를 막으려면 개인의 투자 판단만 문제 삼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투자자가 위험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레버리지 투자는 단순한 투자 과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집값 급등기를 지나며 형성된 자산 격차의 기억, 노동소득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체념, 정책이 늘 시장보다 늦게 움직였다는 불신이 함께 만든 결과다.
당국도 자금 흐름의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은행권 규제 이후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흐름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위험을 확인한 뒤 대출 창구를 조이는 방식이 반복될수록 시장에는 "정책은 늘 뒤따라온다"는 신호가 남는다. 과열을 식히기 위한 규제조차 늦게 등장하면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서둘러 올라타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출 조이기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해법이라기보다 최소한의 방어선에 가깝다. 다음 빚투를 막으려면 자산 가격이 급등한 뒤에야 대출을 누르는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벼락거지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시장이 달릴 때마다 다시 빚을 낼 것이다. 당국이 정말 줄여야 할 것은 대출 잔액만이 아니라, 빚을 내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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